어린이날이 있는 5월, 공연계에서 가장 바쁜 단체를 꼽으라면 단연 브러쉬씨어터다.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 소극장에서 ‘두들팝’,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드래곤 하이’,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우기부기’가 잇따라 관객과 만난다. 6월 이후에도 국내 여러 공연장이 코로나19로 해외 투어가 중단된 브러쉬씨어터를 앞다퉈 초대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4개월여 미국 투어를 돌던 중 코로나19로 3월 12일부터 공연이 중단됐습니다. 한국 공연에 집중하면서 지식재산권(IP) 사업을 확장한 덕분에 코로나 시기에도 전년도보다 매출이 올랐습니다.”
최근 국민일보와 만난 이길준 브러쉬씨어터 대표는 코로나19로 공연계가 침체한 상황에서도 극단이 성장한 비결을 털어놨다. 2014년 말 설립된 브러쉬씨어터는 체험 중심의 공연과 적극적인 해외 마케팅을 앞세워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20여개 국가에서 500회 이상 공연했을 정도. 이 대표는 “공연의 라이선스 판매 외에 출판사와 협업해 공연 원작의 동화를 선보이고 영상 콘텐츠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등 IP 사업으로 새로운 출구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수익 사업에 적극적인 브러쉬씨어터는 유한책임회사(LLC) 형태의 기업형 극단으로 공연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직원은 배우 스태프 기획 기술 등을 합쳐 28명이다. 2019년 서울 성수동에 마련한 사무실 겸 연습실은 종종 아이들을 위한 재밌는 이벤트를 열어 엄마들 사이에서 핫한 공간으로 인기가 높다.
브러쉬씨어터의 행보는 국내 공연계에서 ‘별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극단 설립 전까지 이 대표는 흔한 대학로 연극쟁이의 길을 걸었다. 대학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약 10년간 극단 하땅세에서 배우, 홍보, 기획, 조연출 등을 맡았는데 ‘연극을 하면 가난한 게 당연하다’는 인식을 깨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동기나 후배 가운데 생활고에 시달리다 무대를 떠나는 사례를 많이 봤습니다. 공연 생태계가 언제까지 예술가들의 희생으로 돌아갈 순 없습니다. 브러쉬씨어터의 행보가 공연계에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그가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브러쉬씨어터를 만든 계기는 하땅세 소속이던 2013년 연극 ‘천하제일 남가이’로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오프에 참가한 데 이어 2014년 아동극 ‘붓바람(BRUSH)’으로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등 유럽 투어에 나서면서다. 특히 라이브 음악과 그림 그리는 퍼포먼스로 이뤄진 ‘붓바람’은 에든버러 프린지에서 독창적인 아시아 공연에 수여하는 아시안 아츠 어워드(Asian Arts Award)를 한국 공연으로는 처음 받았다. ‘붓바람’은 이듬해 아동극 ‘오버코트’와 함께 에든버러 프린지 무대에 다시 섰고 미국 중국 등의 대형 회사와 투어 계약을 맺었다.
“당시 기획을 맡고 있어서 한국 작품의 해외 시장 개척 과정을 깊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해외 아트마켓 등을 돌아다니면서 앞으로 내 작품을 만들면 우선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뒤 한국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제적인 수입과 함께 스타 마케팅 위주의 국내 공연계에서 소규모 작품을 알리는 지름길이라고 봤거든요.”
브러쉬씨어터가 아시아문화원와 함께 2016년 공동제작한 4D 음악극 ‘리틀 뮤지션’은 2017년 이란 국제아동·청소년연극제에서 연출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고 2018년 에든버러 프린지 ‘어린이공연 베스트3’에 뽑혔다. 2018년 에든버러 프린지에서 선보인 미디어 드로잉쇼 ‘우기부기’ 역시 현지 신문 가디언으로부터 ‘2018 최고의 공연’으로 선정되며 아시안 아츠 어워드를 받았다. 이후 해외 공연이 많아진 브러쉬씨어터는 한국에선 만나기 어려운 단체가 됐다.
“브러쉬씨어터의 작품들은 화려하지 않아요. 상상력과 순수함이 저희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입니다. 저희의 경쟁력은 기동성입니다. 해외 투어를 통해 프로덕션의 간소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두들팝’만 봐도 박스 1개면 그 안에 모든 도구가 다 들어가기 때문에 어디서든 공연할 수 있어요.”
이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브러쉬씨어터 작품의 영상화와 함께 실감 콘텐츠 및 애니메이션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사회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브러쉬씨어터는 지난해 중국의 한한령도 뚫었다. 지난해 11월 ‘두들팝’은 중국 공연 회사 그랜드보트와 6년간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는데, 화상회의를 통한 비대면 오디션 및 원격으로 기술 이전이 진행됐다.
“브러쉬씨어터는 그동안 적극적으로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남들과 차별되는 기술력, 매력과 함께 제작 및 유통 시스템과 브랜딩에 대한 고민이 여기까지 오게 만드는 힘이었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긴 하지만요.”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