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르기트섬 가운데 놓인 백 년도 더 된 듯한 벚나무 아래서였다. 벚나무의 웅장함에 매료되어 한참을 바라보다가 사진기를 꺼내 들었다.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사진을 찍기에 참 좋은 나무죠”라고 말한 그는 자신을 헝가리인이자 대학생이라고 소개했다. 난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지 않았지만 굳이 싫은 내색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그와 몇 마디 더 주고받았다. 그러다 내가 시인이라는 사실까지 말하게 되었다.
그는 시인을 만나서 기쁘다며 두세 평 남짓한 크기의 특별한 가게로 나를 이끌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면 분명 오래된 나무 냄새가 코를 찔렀을 법한 공간이었다. 이곳엔 나무로 만든 조각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나는 책상 위에 장식해두고 싶은 조각품을 고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고르는 나에게 주인이 빨간색 물감이 칠해진 꽃 형태의 조각을 권했으나 나는 거절하고 귀가 날개처럼 커서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은 개 두 마리를 골랐다.
가격을 물었더니 이곳의 모든 조각품 가격은 ‘주관적’이라고 했다. 무슨 의미냐고 묻자 구매자 스스로 가격을 책정하여 주인에게 지불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주인이자 예술가의 자신감에 놀랐다. 잠깐의 고민 끝에 지갑에 있던 현금을 몽땅 건넸다. 꽤 큰돈이었다.
예술작품 가격을 직접 매겨본 건 처음이었다. 조각품 주재료인 나무 원가를 생각한다면 터무니없이 큰돈을 지불한 게 되지만 나만의 계산법으로 보았을 땐 한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나는 이 조각품을 만나게 된 하루의 모든 과정을 가격으로 책정했다. 꽃잎이 폴폴 휘날리던 부다페스트의 완연한 봄날씨와 웅장하고 아름다웠던 벚나무, 그 아래서 우연히 만난 다정한 헝가리인까지 포함하여 조각품 가격을 책정했다. 우연과 자유가 깃든 이것이 바로 예술이지 않은가. 그래서 인류가 오래도록 예술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