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근 목사의 묵상 일침] 어린이라는 세계

입력 2021-05-05 03:03

신약성경 복음서에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안수 기도를 받게 하려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렇게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을 꾸짖는다. 제자들은 왜 그랬을까.

성경은 그 이유에 대해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정도 추측은 가능하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사람들을 가르치시기 바쁜데 눈치 없이 아이들까지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하냐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제자들 눈에 어린이들은 예수님 사역에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비단 제자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고대 사회에서 어린이들은 존중받지 못했다. 사실 고대는 말할 것도 없이, 근현대까지도 어린이는 귀중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다. 물론 ‘귀한 집’ 자녀들은 예부터 귀한 대접을 받았겠으나, 일반적으로 어린이는 사람대접을 받는 축에 끼지 못했다.

지난해 말 출간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김소영 씨의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작다. 그래서 어른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큰 어른과 작은 어린이가 나란히 있다면 어른이 먼저 보일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하지만 어떤 어른들은 그 사실을 깜빡하는 것 같다.”

어린이들이 존중받지 못해왔던 이유는 그들이 물리적으로 작다는 데 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보다 작을 뿐 아니라 힘도 세지 않다. 그러므로 어른들에게 어린이는 쉽게 제압할 수 있는 대상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통제권 안에 넣을 수 있는 이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 마련이다. 아니 무관심 정도가 아니라 무시한다. 하나의 인격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요즘 같이 애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어디 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근까지 들려온 비극적 소식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어린이에 대한 무시를 넘어, 폭력과 학대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보다 강한 존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어린이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 약자다. 어린이가 존중받지 못하는 곳에서 다른 약자들이 존중받을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결국 얼마나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인가 하는 것은 어린이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어린이들을 무시하고 배제하려는 제자들의 모습을 지켜본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을까. 마가복음은 예수께서 제자들의 행동을 보시고 분노하셨다고 기록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 10:14) 아마도 예수님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당시 어른들의 시선에서 어린이는 무가치하고 성가신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이야말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자라고 말씀하시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예수께서 가져오신 천국은 어린이들이 무시되지 않는 곳이다. 작고 미약한 어린이도 하나의 존재로 온전히 인정되는 곳이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개인적으로 ‘~의 날’이 사라지는 것을 우리 사회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날을 만들어 따로 챙겨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어린이들이 하나의 존재로서 소중하게 여겨지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무엇보다 예수께서 어린이들을 환영하고 축복하셨던 것처럼, 예수를 따르는 성도들이 같은 시선으로 이 사회의 약자들을 대표하는 어린이들을 환영하고 존중할 수 있길 소망한다.

송태근 삼일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