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찾을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하…. 현장에 들어갔을 때는 정말 끔찍했습니다. 어릴 때 채운 목줄이 살을 파고들어 목이 썩어가고 있었어요. 암컷 개들은 뒷다리 아킬레스건이 손상됐는데, 병원에서는 사람이 고의로 자른 것으로 판단했어요. 제자리에서 번식을 강요하려는 의도로 추정됩니다.”
지난 3월 31일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100여m 떨어진 야산에서 대규모 동물학대 현장이 적발됐습니다. 주민 제보로 출동한 동물보호단체 동행세상이 발견한 개는 30여 마리로 대부분 목 다리 등 신체가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였죠. 이른바 인천 서구 개지옥 사건입니다.
그로부터 1개월이 지났습니다. 경찰 수사 및 구청의 행정적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남은 동물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치료 및 임시보호는 오로지 시민들의 봉사 및 후원으로 이뤄지고 있지요. ‘관심이 사그라지면 그때 구조된 동물들은 어떻게 될까’ 다들 걱정이 많습니다.
구조된 개 중 유독 트라우마가 심한 꼬마 백구가 있습니다. 어찌나 소심한지 취재진을 보자마자 놀라 딸꾹질을 하는 5개월 강아지, 여우입니다. 임시보호자인 김태희(29)씨는 “워낙 겁이 많아서 산책조차 나가지 못하는 새끼 백구가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번 사연에서는 꼬마 백구 여우의 좌충우돌 사회화 과정을 소개합니다.
동행세상의 유튜브 채널에는 약 20시간 분량의 당시 동물구조 현장 영상이 올라와 있습니다. 곳곳에 방치된 개들의 썩은 사체, 아킬레스건이 절단된 암컷 개, 새끼 때 묶은 목걸이에 목이 졸려 죽어가는 성견, 토치에 그을린 뒤 냉장고에 보관 중인 토막 난 개고기가 보입니다. 주민들은 중·고등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통학 길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개 주인인 80대 여성 A씨는 현재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A씨는 동물 소유권을 인천 서구청에 넘겼으며 “개들을 애완용으로 길렀다”고 주장합니다. 영상 속에는 A씨와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애완용이면 60마리까지 길러도 된댔어, 구청에서.”(A씨) “뒷다리를 도려내고 음식쓰레기를 먹이는데 이게 애완인가요?.”
학대자로부터 구해낸 동물의 돌봄 문제는 고스란히 동물단체의 몫이 됐습니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유기·학대 동물을 돌볼 의무는 지방자치단체에 있지만 인천 서구에는 유기동물보호소가 없기 때문이죠. 절차대로라면 위탁 동물병원에 수용해 일정 기간 입양 공고를 한 뒤 남은 동물에게는 안락사가 시행됩니다.
인천 서구청은 개 30여 마리를 시민단체에 기증한 뒤 임시로 보호할 부지를 물색하고 있습니다. 서구청 관계자는 “사람을 고용해 임금을 주면서 (임시보호소를) 운영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구조된 개들이 더 좋은 환경으로 입양 가도록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제보자 태희씨는 여우를 “개지옥의 개들 가운데 유독 겁이 많은 아이였다”고 설명합니다. 구조된 개들은 진드기 예방 차원에서 털을 박박 미는데 여우는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렸죠. 갈 곳 없는 여우가 딱했던 그는 8평 남짓한 좁은 오피스텔 한가운데에 보호용 견사를 설치했습니다. 좋은 가족을 찾아줄 때까지 녀석을 돌보기로 한 겁니다.
임보 1개월이 지났지만 여우는 아직도 좁은 철창 밖을 나서지 못합니다. 끔찍한 학대의 기억 때문에 바깥세상과 교류하지 못하는 겁니다. 인간이 밉지만 결국 따뜻한 인간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 여우의 운명. 지난달 28일 여우는 동물행동교정사이자 동물구조단체 경력이 있는 기자의 도움으로 사회화 교육에 나섰습니다.
이날 여우는 생애 첫 산책에 도전했습니다. 임시보호자를 제외한 누구와도 따뜻하게 교감한 적 없는 녀석에게는 계기가 필요하거든요. 인적이 드문 공원을 찾아갔습니다. 여우가 무서워할 낯선 발걸음, 온갖 소음에서 자유로운 환경이지요.
대형 캔넬(이동상자)을 열어두고 여우가 스스로 걸어 나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여우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산책 줄은 제보자의 손목에 단단히 묶었고요. 10여분 뒤, 캔넬 밖으로 걸어 나온 여우가 달려간 곳은 놀이기구 아래 어둑한 곳이었습니다. 제보자는 당황하지 않고 평소 좋아하던 간식을 주며 여우를 달랬죠.
다음 도전으로 여우와 제보자는 푹신한 들판에 앉아 휴식을 취했습니다. 신나게 걷고 달리지 않아도 괜찮아요.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여우에게는 좋은 산책이거든요.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요. 줄곧 가랑이 사이에 숨어 있던 여우의 꼬리가 하늘 위로 솟았답니다. 제보자의 발걸음에 맞춰 공원을 한 바퀴 돌기도 했고요. 주변 행인, 자동차 소리에 가끔 놀랐지만 그 정도면 대단한 발전이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학대를 받고 지냈지만 이렇게 금방 적응했어요. 얘도 똑같은 반려견이구나, 마음이 아프면서도 기뻐요.”
제보자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여우의 첫 산책은 성공했답니다. 태희씨는 매일 고요한 밤이 되면 여우와 산책에 나서고 있지요. 학대현장에서 구조된 꼬마 백구의 마음을 여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일까요. 한 달? 두 달? 정답이 궁금한 분들은 여우의 인스타그램 ‘fox_imbomam20210410’을 팔로우해주세요.
이성훈 기자 김채연 인턴기자 tellme@kmib.co.kr
[개st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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