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재 목사의 ‘생명 설교’]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입력 2021-05-05 03:05

헨리 나우웬의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라는 책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 책의 제목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성경 인물 중 예수님을 닮은 많은 사람이 있다.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은 그중 하나다.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다.(행 6:8) 이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셨던 예수님을 생각나게 한다.(요 1:14) 예수님의 충만한 은혜와 진리는 이 땅의 영혼들을 향한 사랑과 권능으로 나타났다. 그는 주린 자를 먹이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으며 귀신들린 자를 자유롭게 하셨다.

예수님은 충만한 은혜와 권능으로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셨고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이 땅의 영혼들을 위하여 은혜와 능력을 사용하셨다. 스데반은 어떤가. 성경은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8절)라고 기록돼 있다.

그도 충만한 은혜와 권능을 자신이 아닌 그에게 붙여주신 영혼들을 위해 사용했다. 그들의 병듦과 연약함과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신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삶을 드렸다.

우리 또한 하나님께 은혜와 권능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나에게 조금이라도 더 주신 것이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은혜와 권능이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마음을 낮은 곳으로 향하여 영혼들을 섬겨야 한다. 그럴 때 우리도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이시자 모든 지혜의 근원이다. 스데반은 어떠했는가. 스데반이 예수님을 증거할 때 이를 반발하는 무리들과 논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하늘의 지혜로 충만한 스데반을 당하지 못하였다.(행 6:10)

무리들은 지혜와 성령으로 충만한 스데반을 당하지 못하게 되자 이제는 악한 방법을 사용한다. 사람들을 매수했고 충동시켰고 거짓 증인을 내세웠다. 예수님도 똑같은 일을 당하셨다. 무리는 거짓 증인들을 세워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고 성경을 분명히 밝힌다. 이렇게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스데반처럼 예수님의 무죄함(거룩)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 애초에 죄 가운데 태어나기에 죄가 마치 제2의 천성처럼 우리를 따라다닌다. 이런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 존재 자체가 변화돼야 하는데 이는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하고, 오직 믿음만으로 가능하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그와 연합할 때 우리는 거듭난 새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스데반이 공회에 서게 되었을 때 스데반은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여 마치 그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행 6:15) 예수님도 높은 산에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올라가셨을 대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마 17:1~2) 그리고 그 영광은 참혹했던 십자가 죽음의 현장에서 선명하게 드러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 동참했던 로마 군대의 백부장마저도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성경에 기록돼 있다.(막 15:39)

존재의 변화는 변화된 행동으로 증명된다. 거룩한 존재로 변화된 사람이 어떻게 괴로움 없이 여전히 죄를 즐거워하고 죄 속에서 살 수 있겠는가. 성경은 단호하게 “그럴 수 없느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죄인에서 의인으로 존재가 변했고, 그를 통해 행동이 새로워져야 한다. 그리고 그 새로워진 우리의 모습 속에 하나님의 영광은 세상에 나타나게 된다.

(미국 워싱턴순복음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