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시인’이라는 이름을 단 일군의 시인들이 출현했다. 석민재 유승영 서형국 권상진 권수진 이필이 그들로 ‘시골시인-K’라는 제목으로 합동 시집을 출간했다. 각각 시 10편과 산문 1편을 써서 함께 묶었다. 여섯 명의 시인은 동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다. 정기적인 모임을 해온 사이도 아니다. 경상도에 살거나 이곳에서 태어나 시를 쓰고 있다는 정도가 공통점이 될 수 있다.
석민재는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경남 하동에서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 2013년 ‘전태일문학상’을 받은 권상진은 경북 경주에서 직장 생활을 한다. 유승영은 2018년 첫 시집 ‘하노이 고양이’를 펴냈고 경남 진주로 내려와 논술교사로 일한다. 2015년 ‘철학적인 하루’라는 시집을 낸 권수진은 고향인 경남 창원에서 활동한다. 서형국은 경남 고성에서 연탄불고기 식당을 하며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2016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이필은 경북 영주 출생으로 이들 중 유일하게 서울에 산다.
이들은 유명 시인이 아니다. 중견 시인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시집 한 권을 겨우 출간한 이들이고, 아직 자기 시집이 없는 이들도 있다. 그러니까 주로 지방에서 삶을 꾸리고 살며 시를 쓰는 40대 중·후반 시인들이라 할 수 있다.
이필은 시집 맨 앞에 실린 ‘웰컴, 시골시인’이란 시에서 시골시인을 묘사했다.
“시골시인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잘 가요, 황인숙, 이성복, 전윤호, 그리고 젊고 예쁜 도성안 시인들이여/ 오늘은 연탄불고기 식당도 일찍 문 닫는/ 이름 불러 줄 이라곤 가까운 가족밖에 없는/ 그런 시인들 하나둘 모여/ 늦은 저녁, 빈대떡에 막걸리로 목 축이는 시간/…”
권상진은 산문 ‘가짜시인 생존기’에서 “시골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외롭고 쓸쓸한 일이다. 학연과 지연, 정보와 기회, 이 모든 것들을 열정 하나로 극복해 내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불평불만만 늘어놓으며 시를 게을리하는 염치없는 시인은 되고 싶지 않다”고 시집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해 여름 모인 이들은 스스로를 ‘시골시인’이라 이름 짓고 공동 시집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출판사 측은 “중앙 문단에서 소외된 지방의 작가들이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지역사회에서 얼마든지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원고를 취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골시인 시집은 지방에서 외롭고 치열하게 시작 활동을 하는 시인들의 존재를 환기시킨다. 문단이나 출판사에 의존하지 않고도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한 방법을 제시한다. 서형국은 “‘시골시인-K’를 필두로 ‘시골시인-A’ ‘시골시인-B’ ‘시골시인-C’로 이 프로젝트가 쭉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썼다.
발문을 쓴 성윤석 시인은 수록된 시에 대해 “밥하고 빨래하고 노동하고 사람을 만나고 온 손으로 쓴 시들”이라며 “책상에서 공부하고 대학원 가고 인맥 쌓아 상 받고 메이저 출판사에서 시집 내고 비슷한 경로를 밟아온 문학평론가들에 의해 상찬을 받아온 분들의 시가 아니”라서 흥미롭다고 평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