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최근에 지은 파이프오르간은 지난해 12월 전주기전대에 세워졌다. 내가 한국에 온 지 20년째 되던 해인 2018년부터 시작된 스무 번째 오르간이다.
파이프오르간은 조희천 전주기전대 총장의 40년 넘는 꿈이었다. 그는 늘 가슴 한편에 파이프오르간을 짓겠단 염원을 품고 살아왔다. 어느 날 조 총장은 100여년 전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학교건축물 중 한 창고를 수리하기 위해 해체하다가 그 천장 위에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서까래를 발견한다. 그는 100년이 넘게 숨겨져 있던 이 공간을 보자마자 이곳에 파이프오르간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고 한다.
조 총장은 전주 시내 한복판에 있는 이 학교에 파이프오르간을 지어서 학생과 주민들에게 그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꿈을 내비쳤다. 파이프오르간을 짓고 그 소리를 들려주는 일이 또 하나의 전도라고 생각한 것 같다. 얼마 되지 않아 나에게 연락을 해 왔고 곧바로 파이프오르간 제작이 시작됐다. 늘 갈망하던 조 총장의 꿈이 현실로 옮겨지는 순간이었다. 서까래 천장 아래에 300석 규모의 채플을 만들고 그 이름을 ‘오르겔홀’이라 붙였다.
전주기전대는 미션스쿨이긴 하지만 비기독교인 학생 수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전까지 전북 지역엔 아직 파이프오르간이 없었다. 과거에 많은 선교사가 학교와 교회를 세웠던 전주의 미션스쿨에 전북의 첫 번째 파이프오르간이 세워졌다.
전주기전대는 지난해 파이프오르간을 완성한 후 올해부터 음악과에 오르겔 전공을 만들고 교수를 임용했다. 그리고 3월부터 영상으로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올리기 시작했다. 조 총장은 이 소리가 개강 예배를 비롯한 매 예배 때, 그리고 이곳에서 결혼식이 올려질 때 등 많은 사람에게 수시로 들려지길 바랐다. 파이프오르간이 내는 성령의 바람 소리를 듣고 그 속에서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오랫동안 비전을 꿈꾸며 철저하게 준비해 온 그의 모습이 놀라웠다.
한국에서 20여년간 20대의 파이프오르간을 지으면서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파이프오르간이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이 소리를 오래전부터 품고 꿈꿔온 사람들을 만날 때면 신기하기도 했다. 하나씩 만들어질 때마다 반드시 함께하는 고통과 더불어 따라오는 은혜는 마치 쌍둥이처럼 붙어 다녔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나를 빚으시고 훈련하는 과정임을 안다. 특히 열세 번째 오르간 이후 인생의 세 번째 부분을 살아가면서는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금씩 구체적으로 보여주셨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앞으로 내가 해 나갈 것들에 관한 것이다. 30여년간 파이프오르간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헤쳐가야 할 또 다른 고난이 가득하다. 그러나 내 남은 생을 투자해 기꺼이 이루고 싶은 꿈이 몇 가지 생겼다. 그중 하나는 전쟁 무기를 재료로 평화를 연주하는 파이프오르간인 ‘무기오르겔’을 만드는 일이다.
정리=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