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삼성전자 개인 최대 주주가 됐다. 고(故)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몰아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법정비율대로 상속을 택했기 때문이다. 상속과 관련한 논란을 일절 없게 하고, 나아가 이 부회장 등의 상속세 납부 부담을 줄여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2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주식 상속에 대해 별도의 유언을 남기지 않았고, 유족들은 법이 정한 비율대로 상속을 결정했다. 유족들은 상속과 관련해 어떤 논란도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비율에 따라 홍 전 관장은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 3분의 1을 받게 돼 2.3%를 보유하게 됐다. 이 부회장은 1.63%,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지분율은 각각 0.93%가 됐다. 홍 전 관장은 개인으로서는 최대 주주다. 향후에 홍 전 관장의 주식을 이 부회장 등 자녀들이 상속받으면 또 한 번 상속세를 내야 한다. 홍 전 관장이 지분을 포기하거나 적게 받으면 피할 수도 있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해진 비율이 아닌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면 또 다른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S는 법정비율대로 나눴고, 삼성생명은 이재용·이부진·이서현이 각각 3대 2대 1의 비율로 받았다. 홍 전 관장은 삼성생명 주식은 받지 않았다.
홍 전 관장이 자녀들보다 삼성전자 지분을 많이 보유하게 되면서 가족 간 불협화음이 생길 우려도 낮아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홍 전 관장이 경영권 방어 등의 이슈가 불거지면 보유 지분을 활용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번 상속으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지분 보유가 늘어난 이서현, 이부진 자매가 계열 분리를 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는 점에서 계열 분리보다는 삼성 울타리 안에서 책임경영에 집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유족들이 받은 주식 상속가액도 홍 전 관장이 5조4000억원으로 가장 많다. 이 부회장이 5조원, 이 사장이 4조5000억원, 이 이사장이 4조1000억원 순이다. 상속세도 홍 전 관장이 3조1000억원으로 가장 많이 부담하고 이재용·이부진·이서현 남매가 각각 2조9000억원, 2조6000억원, 2조4000억원을 내게 된다.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에 대한 상속세만 9조원에 달하기 때문에 이 부회장에게 삼성전자 주식을 몰아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회계법인 KPMG의 연구를 인용해 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줄 경우 우리나라의 증여세와 상속세 부담이 각각 세계 1·2위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KPMG에 따르면 1억 유로 가치 기업을 자녀에게 상속하는 경우 실제 부담하는 상속세액은 한국은 4053만 유로(실효세율 40.5%)로 54개국 중 미국(실효세율 최대 44.9%)에 이어 2번째로 많았다.
경총은 최대 주주 주식 할증평가(20%)까지 적용받는 대기업은 상속세 실효세율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추정했다. 또 1억 유로 가치 기업을 물려받을 때 실제 부담하는 증여세액도 한국이 4564만 유로(실효세율 45.6%)로 54개국 중 가장 컸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