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읽지 못하는 내 아이 ADHD? 난독증도 의심을

입력 2021-05-03 21:59
난독증 아동 40%가 ADHD 겪어
증세 오인 치료 시기 놓치기도

초등학교 입학 후 치료는 늦어
학습 거부·우울증 등 문제 행동

국내 학령기에 최대 17.5% 발생
유치원 때부터 조기 개입 바람직

한 초등학생이 난독증 치료를 위해 음운 인식 훈련을 하고 있다. 한림대의료원 제공

김민철(8·가명)군의 어머니는 최근 아이 문제로 담임교사의 상담 요청을 받았다. 아이가 수업시간에 책을 읽으라고 시키면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래에 비해 읽는 속도가 현저히 느리고 단어를 잘못 읽거나 전혀 다른 소리로 읽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교사는 난독증이 의심된다며 전문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했다. 사실 김군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로 치료받고 있었다. 학교 입학 전 지나치게 산만하고 충동적이며 고집이 세서 병원을 찾았는데 ADHD 진단을 받은 것. 평소 글을 잘 읽지 못하는 것도 ADHD로 인한 주의력 부족 때문으로만 생각했는데 난독증 얘기에 어머니는 충격을 받았다.

실제 검사결과 아이에게 ADHD와 난독증이 함께 있는 것으로 나왔다. 담당 의사는 “기존 ADHD 약물치료와 함께 난독증 치료를 위한 특수 학습훈련이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학기 초 병원 오는 아이들

김성구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대한소아과학회지에 발표한 최신 연구논문에 따르면 난독증 아동 10명 가운데 4명은 이처럼 ADHD도 함께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질환의 증상이 겹치는 부분이 많아 ADHD로 오인하고 난독증 발견이 늦어져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구나 초등학교 입학 후 발견해 치료를 시작하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등교나 학습거부, 불안장애, 우울증, 게임중독, 반항장애 등 다양한 문제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초등학교 입학 전 만 5~6세 정도에 조기개입이 가능하도록 정책적 차원의 난독증 선별검진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3일 “초등학교 개학 후 2~3개월 지난 이맘때, 선생님과 학교적응 관련 면담 후 자녀 손을 이끌고 찾아오는 부모들이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업시간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과잉행동이나 부주의 등 ADHD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의료진도 난독증은 생각지 못할 수 있다. 이럴 땐 ADHD 뿐 아니라 난독증 검사와 평가를 같이 해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에서 국내 학령기 아동 10명 가운데 최대 1.7명(17.5%)이 난독증을 겪고 있었다. 난독증과 함께 나타나는 질환 중 ADHD가 40%로 가장 흔했다.

읽기 장애인 난독증은 글자를 완전히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며 같은 연령, 지능수준, 학습 정도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낮은 읽기 속도와 유창성, 이해력을 보일 때 진단된다. 글자를 소리 내 읽는 것을 싫어하고 글을 읽을 때 속도가 늦고 조사를 빼먹거나 모르는 단어를 다른 단어로 대치해서 읽거나 생략하기도 한다. 발음이 부정확하고 ‘음음’ 등 많은 추임새를 사용하고 말을 하거나 질문받을 때 단어를 빨리 생각해 내지 못한다. 맞춤법이나 쓰기에 문제가 있어 악필인 경우가 많다. 외국어를 습득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시험을 보게 되면 읽는 속도가 느려 문제를 읽지도 못하고 시험이 끝나기도 한다.

난독증은 시지각, 청지각, 음운 인식의 문제로 발생한다. 글자를 보고 인식하는 시지각에 문제가 있거나(말초성 난독증) 글자를 본 후 이를 말소리로 변환하는 과정인 음운 인식, 즉 의미 접근에 문제가 발생하는(중추성 난독증) 경우다.

기능적 뇌MRI 연구에서 난독증 환자들은 읽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좌측 후두와 측두 영역의 활성화가 감소돼 있는 걸로 밝혀졌다. 유전적 원인이 가장 크게 작용하며 가족력이 중요해서 난독증 환아 부모의 50%가 난독증이며 형제의 50%에서 난독증이 발견된다. 이 밖에 가족의 사회경제적 위치, 부모의 읽기교육 방법 등 환경적 요인도 영향을 미친다.

난독증은 뇌의 기능적 문제에 의한 것이지만 지능은 정상이어서 지적 장애와는 다르다. 지적 장애가 없는 IQ 70 이상인 경우에 진단된다. 김 교수는 “이런 아이들은 글을 읽어주면 듣고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어 미국에서는 성장 후까지 지속되는 난독증 환자에게 오디오북을 제공한다든지 하는 편의를 통해 학습을 마치게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지능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창조적 분야에서 높은 성취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초등 입학 후 치료는 늦어

ADHD와도 구분해야 한다. ADHD 아동은 단어나 문장 읽기까지는 가능하나 성급하게 읽는 경우가 많아 생략해서 읽거나 문장을 띄어 읽거나 읽었던 곳을 모르고 다시 돌아가는 등의 실수가 좀 더 빈번하다. 이들은 긴 시간 집중해서 읽기 어려울 뿐이지 짧은 시간 읽고 이해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반면 난독동 아동은 글자 인식, 글자 간 음운 이해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 한글 학습을 할 때 글자의 음을 여러 번 반복해 알려줘도 잊어버리고 헷갈려 하면서 한 개 글자인데도 음운을 인식해 읽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김 교수는 “난독증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글을 읽기가 어렵기 때문에 학습에 흥미를 잃고 집중 못하고 문제 행동을 하게 되면서 ADHD로 오인되기도 한다”고 했다.

실제로 ADHD가 의심돼 병원을 찾았다가 난독증도 함께 진단받거나 ADHD가 아닌 난독증으로 밝혀지는 경우도 있다. ADHD, 난독증, 두 질환을 함께 갖고 있는 경우 각각 치료법이 다르다. ADHD는 약물 및 행동 치료를, 난독증은 음운인식 훈련과 음소결합 훈련을 해야 한다. 난독증의 경우 최근 환자 상태에 따른 맞춤형 뇌파훈련법인 뉴로피드백과 특수 장비를 접목한 방법이 활용되고 있다.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 중요한 것은 조기 발견과 치료다. 부모나 교사들이 난독증에 대한 관심을 갖고 아이들을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초등학교 1~3학년 시기에 발음이 부정확하거나 운율에 둔감해 리듬을 타는 게임에 어려움을 보이고 난독증의 가족력이 있다면 의심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난독증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때부터 치료에 들어가면 늦다. 이르면 유치원 때부터 조기 개입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이후 발생하는 문제를 줄일 수 있다. 김 교수는 “현재 생후 14일~만 6세 대상 영유아건강검진에서 한국형 영유아 발달검사가 이뤄지고 있는데, 마지막 검사 시기인 만 6세 때 난독증 선별검사 항목을 포함하는 방안도 정책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경미 임상심리전문가는 “난독증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학원 수업이나 기타 활동을 이유로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난독증 치료는 최소 1년 이상 장기 치료를 받아야 효과를 볼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이고 꾸준한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