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자립 선언하는 車업계… “어느 세월에” 속내는 착잡

입력 2021-05-03 04:03

미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 포드의 최고경영자(CEO) 짐 팔리는 최근 한 포럼에서 전기차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터리 내재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 뒤 곧바로 배터리 자체 생산 계획을 공식화했다. 디트로이트에 1억8500만 달러(2060억원)를 들여 배터리 연구·개발센터인 ‘포드이온파크’를 설립하고, 리튬이온 배터리를 자체 개발할 예정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배터리 권력’ 쟁탈전이 뜨겁다. 폭스바겐, 제너럴모터스(GM)에 이어 포드까지 배터리 내재화를 공식 선언했다.

배터리 자체 생산으로 원가 절감 효과를 보지 못한다면 미래 전기차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다.

다만 업계의 무게 중심이 내연기관 엔진에서 배터리와 반도체로 개편되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전기차의 심장’이라 불리는 배터리가 협력 업체에서 개발이 이뤄진다면 완성차 업체가 기대하는대로 기존의 원·하청 수직 관계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서다. 전기차 배터리는 장기간 개발이 이뤄져야 양산이 가능하다는 점도 리스크 요인으로 꼽힌다.

세계 1위 완성차 업체인 폭스바겐은 최근 2030년까지 유럽 내 배터리 공장 6곳을 증설해 연간 240GWh 배터리 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럽의 전기차 배터리 관련 지원금은 1년 사이 10배 증가한 61억 유로(8조900억원)에 이른다.

GM은 자체 생산보다는 배터리 전문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과 협업을 선택했다. LG와의 합작법인인 ‘얼티엄셀즈’를 설립하고 미 오하이오주에 연 30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향후 테네시주에도 두 번째 공장을 들이기로 했다. 테슬라와 현대자동차 역시 배터리 자체 생산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배터리 내재화 바람은 전기차 배터리의 높은 원가가 그 배경에 있다. 전기차 가격에서 배터리 생산에 들어가는 비중은 30~40% 달한다.

다만 업계 안팎에서는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내재화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폭스바겐의 경우 유럽 내 ‘리딩 배터리 기업’이 존재하지 않다는 점이 협업을 다소 망설이게 한다. 관련 시장 점유율은 사실상 한국과 중국, 일본 등이 나누어 가진 상태기 때문이다.

배터리 양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2일 “전기차 배터리는 내구도나 안정성 등 민감한 이슈가 많아 자체 개발까지 최대 20년까지 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완성차 업계의 잇단 ‘배터리 자립’ 선언에 관련 업계가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유기도 하다.

가장 심각한 것은 내연기관을 만드는 전통 완성차 업계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 권력이 엔진에서 배터리·반도체로 넘어가는 와중에 원청 역할만 수행하던 완성차 업체로서는 배터리 업체를 하청처럼 부릴 수 없게 됐다. 수직적 분업 관계가 수평적 분업 관계로 재편되면 자체 배터리 개발에 나선 신생 전기차 빅테크 기업에 비해 비용 절감 효과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