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맞는 사람은 귀하다. 나이가 많건 적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축복이다. 20대 때 여러 생각이 소용돌이치며 마음이 시끄럽던 시절엔 절친으로부터도 공감받기 어렵던 나만의 감성들이 많았다. 내가 참 이상한 사람인가보다 하고 스스로 위로할 변명거리도 찾기 어렵던 때 우연히 읽은 외국 작가의 소설에서 억누르던 감정이 치유된 기억이 있다. 소설 속 인물과의 공감 그 자체도 위로가 되었지만 나와 공통점이라곤 찾기 어려운 다른 사회 다른 인물에게서 나와 꼭 닮은 감성을 발견하니 내가 충분히 있음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존감이 회복되었다.
독서 모임에서 힐링을 하고 친구도, 배우자감도 찾았다는 후배를 최근에만 두 명을 보곤 비슷한 느낌이었겠거니 싶어 부러웠다. 마음이 맞는 사람은 평생 죽기살기로 모아야 하는 것 같다. 바삐 사느라 잊고 지냈어도 귀한 친구였다면 언제든 다시 연결해 삶을 나눠야겠다. 요즘은 취향공동체라는 말도 많이 들린다. 온라인과 SNS에서 자신의 취향과 감성을 공유하는 것이 일상이 되면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쉽게 모여 취향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서로의 감성을 칭찬하고 북돋우며 기를 살려준다. 서로를 격려하는 공감대가 모여 개성과 자존감이 모두 높은 신세대가 출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만 너무 열심히 만나면 부작용도 따른다. 잘 통하는 사람과의 사귐은 대충 설명해도 공감할 수 있어 즐겁지만 가끔 못되고 미운 마음이 정당화될 때가 있다. 마치 모든 사람이 그런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나의 나쁜 면을 고쳐야 할 때를 늦추는 결과를 만든다. 나쁜 감성을 공유하다 못해 증폭시키고 결국엔 폭력을 만들어낸 사건들을 볼 때마다 그런 면에서 씁쓸하다. 지나고보니 나와 참 다른 사람이 결국 내 삶에 울림을 주고 부족한 곳을 채워준 인연이 되어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윤소정 패션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