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정말 날 스페인에 보내려 해… 보여주기용 쇼 아냐”

입력 2021-05-01 04:05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토퍼 안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그는 “북한 주민들을 도와줬던 일들에 대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로스앤젤레스=하윤해 특파원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토퍼 안(41)은 지금 스페인으로 송환될 위기에 처해있다. 자유조선 회원들과 함께 2019년 2월 22일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대사관에 진입한 사건과 관련해 스페인 사법당국이 그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현재 받고 있는 혐의는 모두 6개다. 불법 진입·협박·상해·불법 감금·강도·범죄조직 결성 혐의다.

크리스토퍼 안은 지금 미국 법정에서 스페인 송환 여부를 다투는 재판을 받고 있다. 스페인 법원 문서에 따르면 그가 스페인 법정에서 6개 혐의에 대해 각각 법정 최고형을 받을 경우 최대 24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런 크리스토퍼 안을 돕기 위해 모두 한국계·한국 국적인 3명의 미국 변호사들이 무료 변론에 나섰다. 미국의 한 북한 전문가는 “변호사들은 자유조선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라며 “그의 스페인 송환이 부당하다는 믿음으로 무료 변론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크리스토퍼 안은 피살된 북한의 김정남 아들 김한솔 구출 작전과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 등 자유조선이 주도한 첩보영화 같은 작전에 참여했다. 하지만 스페인 송환 위기에 빠진 크리스토퍼 안은 “이건 영화가 아니다. 내 인생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다음은 국민일보가 지난 20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크리스토퍼 안과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스페인 송환 가능성을 실제로 걱정하는가.

“당연히 걱정한다. 한국 국민들이 이것만은 꼭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일부 언론 보도를 보면 ‘내가 미국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고, 법정 싸움도 다 보여주기용’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절대 그렇지 않다. 미국 정부는 정말 나를 스페인으로 보내려 하고 있다. 내가 법정에 나갈 때 마다 반대편에 있는 미국 검사가 ‘크리스토퍼 안을 감옥에 가두고 스페인에 보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번 재판은 절대 헐리우드 액션이 아니며 ‘보여주기용 쇼’가 아니다.”

-당신을 스페인으로 보내려는 미국 정부에 대해 불만은 없는가.

“나는 분노할 마음의 공간조차 없다. 나의 모든 신경은 지금 우리 가족의 안전과 생계에 집중돼 있다. 한국에도 친척들이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터진 이후 모든 연락을 끊었다. 혹시나 친척들에까지 피해가 갈까 하는 걱정하는 때문이다.”

-현재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인터뷰 내내 배석했던 변호사가 크리스토퍼 안의 동의를 얻어 대신 답했다) 5월 25일 최종 심리가 열린다. 그 날 1심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항소 절차와 관련해 연방대법원을 포함해 앞으로 세 번의 기회가 더 있다. 긴 싸움이다. 미 국무부가 ‘송환에 반대한다’는 결정만 내리면 재판이 그냥 끝날 수 있다. 그러나 국무부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은 상태다.

우리(변호인단)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미국의 송환법은 송환 기준이 정말 낮다는 것이다. 송환을 요구하는 다른 정부에 유리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 국민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준다면 미국 법원이나 국무부, 다른 미국 정부 기관들을 움직이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나 한국 국민들에게 할 말이 있는가.

“(다시 크리스토퍼 안이 대답했다) 한국 정부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다만 한국 국민들에게 ‘내가 왜 그런 작전에 참여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나는 미국 국적이지만 한국인이기도 하다. 집에서도 어머니, 외할머니와 한국말을 쓴다. 같은 민족이고, 같은 말을 쓰는 한국인이 참혹한 상황에 빠진 북한 주민들을 먼저 도와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왜 북한 주민들을 도왔는지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해줄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철저하게 혼자다. 미국 정부도 연방수사국(FBI)도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나는 한국 국민들의 온기가 바다를 건너서 내가 서 있을 법정에까지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자유조선 임무에 참여한 데 대한 후회나 안타까움은 없나.

“나는 자유조선이라는 존재를 통해 희망을 발견한 북한 주민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북한 주민들을 도와줬던 일들에 대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가족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이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냐 하는 점이다. ‘이제 북한 주민들이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마음이 아프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왼쪽 사진은 2017년 열렸던 크리스토퍼 안의 결혼식 모습. 오른쪽은 2011년 버지니아대학 경영대학원에 다닐 때 한인 학생들에게 주기 위해 집에서 김치를 담그는 장면. 크리스토퍼 안 변호인단 제공

“나는 완화된 가택연금 중이라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는 밖에서 일을 할 수 있다. 풀타임 직업을 갖는 데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면접 때 나를 잘 봤던 경영진도 내 백그라운드를 체크한 뒤 퇴짜를 놓는 일이 계속됐다. 나와 관련된 기사들을 보면 마치 ‘갱스터(Gangster·폭력배)’나 테러리스트처럼 나온다. 내가 봐도 갱스터 같은 사진이 있다. 그러나 나는 갱스터도 아니고 테러리스트도 아니다. 나는 내 처와 함께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고 각종 청구서를 갚아야 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는 지금 e커머스 파트타임 일을 하고 있다. 파트타임 일을 구하는 데는 백그라운드 체크가 덜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월급은 30% 정도다.”

-한국과 미국이 스포츠 경기를 한다면 어느 팀을 응원하는가.

“(그는 7시간에 걸쳤던 인터뷰 중 처음 웃었다) 오늘 질문 중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 같다. 양팀 모두 ‘굿 게임’을 하길 바란다.” <끝>

로스앤젤레스·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크리스토퍼 안 첫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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