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마리아·홍난파… 신앙의 발자취 따라 서울을 순례하다

입력 2021-04-30 03:01
한국교회사 투어프로그램 ‘한양에서 김 집사 찾기’에 참여한 박종설(왼쪽) 높은뜻하늘교회 선임 부목사와 세 명의 성도가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홍난파가옥’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높은뜻하늘교회 제공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송월길 ‘홍난파가옥’. 1930년 독일 선교사가 지은 붉은색 벽돌 건물의 일부가 푸른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다. 가곡 ‘봉선화’ ‘고향의 봄’ 등으로 유명한 작곡가 홍난파(1898~1941) 선생이 말년에 6년간 보낸 곳이다.

경기도 용인 높은뜻하늘교회(한용 목사)가 진행하는 한국교회사 투어프로그램 ‘한양에서 김 집사 찾기’에서 일일 가이드로 나선 박종설 선임 부목사는 함께 온 세 명의 성도들과 건물 내에 전시된 유품과 자료 등을 관람했다.

박 목사는 “‘고향의 봄’에 나온 가사 중 ‘나의 살던 고향’은 조선을 의미한다”며 “새문안교회 성도였던 홍난파는 민족음악가였지만 친일파 논란이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홍난파는 아끼던 바이올린을 팔아 자금을 대며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이로 인해 옥고를 치렀다”며 “그러나 가족을 볼모로 협박하는 일제의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일제를 위한 곡을 썼다. 그는 옥고 후유증에 시달리다 43세 나이로 숨을 거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과연 목숨을 걸고 나라와 신앙을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이들은 이어서 중구 정동제일교회와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등을 방문했다. 오후엔 한국기독교회관 등 교계 기관들이 모여있는 종로구 종로5가에서 항일 여성독립운동가 김마리아(1892~1944)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연동교회에서 세례받은 김마리아 선생은 일본 유학 중 2·8독립선언서를 국내에 들여와 3·1운동을 독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으로 활동 중 체포됐다.

2019년 11월 조성된 ‘김마리아길’은 연지동 연동교회를 시작으로 세브란스관(옛 정신여고 본관), 회화나무, 선교사의집, 여전도회관까지 이어진다. 세브란스관 앞에 있는 회화나무는 3·1운동 당시 김마리아 선생과 정신여고 학생들이 태극기를 품고 비밀문서들을 감췄던 곳이다. 박 목사는 “세브란스관은 김마리아 선생이 모교인 정신여고에서 일하던 교사 시절 두 차례에 걸쳐 체포된 곳”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 세브란스관 앞에 있는 항일여성독립운동가 김마리아 선생의 흉상. 높은뜻하늘교회 제공

1934~37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 7~10대 회장을 역임한 김마리아 선생은 여전도회가 일제에 맞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도록 지도했으며 44년 고문 후유증으로 별세했다. 예장 통합 측 여전도회전국연합회는 지난해부터 여전도회관에서 ‘김마리아 기념전’을 열고 있다.

높은뜻하늘교회는 이번 달부터 장년 성도들을 대상으로 매달 1회씩 ‘김집사 찾기’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에 있는 한국교회사 유적들을 돌아보고 평범하면서도 비범했던 신앙 선배들을 배우자는 뜻에서 프로그램 이름을 지었다.

회화나무. 높은뜻하늘교회 제공

박 목사는 “2019년 교회 교역자들과 한국교회사 현장에서 애국과 신앙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며 “성도들도 이런 경험을 하면 좋을 것 같아 교회에 프로그램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교회는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프로그램 참석 인원을 4명으로 제한했다. 일일 가이드를 하는 박 목사가 성도 3명과 동행한다. 일정은 서대문형무소 독립문 홍난파가옥 이화여고 배재학당 등을 거쳐 종로5가 ‘김마리아길’ 코스, 부암동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방문 등으로 구성했다. 박 목사는 깊이 있는 해설을 위해 평소 교역자들과 역사 공부를 하고 조선시대 및 근현대사 유적지 탐방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프로그램에 참석한 홍길자 권사는 “역사적 현장이 잘 보존돼 믿음의 선배들이 지켰던 숭고한 가치가 잘 계승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 목사는 “코로나19 시대에 한국교회사를 배우며 신앙 유산을 계승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