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홍성훈 (11) 첫 유럽 수출… 아픔 딛고 일어선 우크라이나 교회에

입력 2021-05-03 03:03
홍성훈(왼쪽) 파이프오르간 제작 장인이 2017년 9월 우크라이나 키예프 타라스세브첸코대학에서 기념 연주회를 하기 전 파이프오르간을 살펴보고 있다.

2017년 9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슬로브쥐차(생명의빛)교회에 설치된 열여덟 번째 파이프오르간은 한국에서 유럽으로 수출한 첫 사례다. 모든 파이프오르간을 짓는 데 우여곡절이 있지만, 내가 이 파이프오르간을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는 따로 있다.

소련의 지배를 받기 전까지 우크라이나는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농업을 발전시켜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문화적으로도 부흥했던 나라였다. 현지 목사와 선교사들에 따르면 당시 키예프에는 금빛 지붕의 교회들이 많아 언덕에서 보면 눈이 부실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1922년 우크라이나가 소련에 강제 합병되면서 많은 교회가 차례로 문을 닫고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다.

20여년 전, 우크라이나의 쿠네츠 현지 목사와 임현영 선교사 그리고 요한선교단의 김동진 목사는 무너진 채 방치돼 있던 그 교회의 터에서 벽돌 세 장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반드시 교회를 다시 세우겠노라고. 그리고 15년이란 긴 시간에 걸쳐 그곳에 조금씩 교회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름이 40m인 둥근 모양의 교회는 높이가 50m에 달하지만 한 층밖에 없는, 천정이 높은 아름다운 교회였다. 완성돼 가는 교회의 모습을 보며 세 사람의 마음엔 ‘입당예배를 할 때 이곳에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다고 한다.

그분들과 우연히 만나게 된 나는 교회에 파이프오르간을 놓자고 얘기를 나눴다. 그러나 나와 가난한 목회자인 그들이 파이프오르간을 세우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1년 가까이 고민을 하던 어느 날 작업실 한편에 언젠가 기회가 있을 거란 생각으로 만들어 뒀던 작은 규모의 파이프오르간 뼈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곧장 김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사님, 우리 합시다.”

대책 없이 시작은 했으나 문제는 돈이었다. 우리는 모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진 일곱 명이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팸플릿을 제작해 이곳저곳에 발품을 팔며 홍보했다.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후원금을 보내왔다. 그중엔 암 환자도 있었다. 어떤 분은 100만원이란 돈을 덜컥 내놨다.

그렇게 십시일반 후원금을 보내준 덕분에 재료비의 3분의 1 정도가 모였다. 나머지 비용 중 일부 재료비와 인건비는 내가 감당했고 나머지는 세 목회자가 힘겹게 마련했다. 이탈리아의 거래처 마이스터는 이 소식을 듣고 파이프를 무료로 보내주기도 했다. 이 일의 여파로 한참을 재정적으로 힘들게 보냈다. 아내와 상의도 없이 내려버린 결정에 원망의 말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나에게 강권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니면 누구도 이 일을 할 사람이 없었다. 나 혼자서는 할 수 없었지만,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심을 느꼈다. 기적은 파이프오르간을 완성한 후에도 이어졌다.

정리=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