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층간소음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층간소음이 유발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위험한 사건까지 발생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다른 건 몰라도 층간소음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제법 너그러운 사람이라고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지금껏 전전해 오던 집들에서 타인이 내는 소리들을 어마하게 들으며 살아왔다. 어떤 소리들은 정겹고 아름다웠다. 이를테면 옆집에서 치는 피아노 소리 같은 것. 어설프고 자꾸만 틀리던 연주가 점점 나아지는 것을 들으며 나는 청소를 하다 말고 박수를 친 적도 있었다. 물론 어떤 소리들은 무섭고 고통스럽다. 경기 일산의 한 복도식 아파트에서 살던 시절, 나는 소리만으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맞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경찰에 신고하는 손이 덜덜 떨렸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정기적으로 들리는 타인의 소리는 두 개다. 하나는 오줌 누는 소리. 어느 날인가 친구와 조용히 저녁밥을 먹는데 어디선가 쪼르르 물을 따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변기 물을 내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우리는 와하하 웃었다. 친구가 말했다. “방금 소리가 오줌 누는 소리였구나. 너무 청량해서 차라도 따르는 줄 알았어.” 또 하나의 소리는 아이의 괴성이다. 아주 높고 우렁차다. 어디까지 올라가나 보자는 듯, 아이는 쉬지 않고 계속 소리를 지른다. 집에서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여자아이일까 남자아이일까. 저러다 목이 아프거나 잠기진 않을까.
그러던 어느 날 귀가하며 집에 들어서려는데 아이의 고성을 또 듣게 됐다. 바로 옆집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집 안에서 들을 때보다 훨씬 크고 자세하게 들렸다. 나는 그동안 집 안에선 듣지 못했던 것을 들었다. 고성과 고성 사이에 너무 행복하고 재미 있어 터지는 아이의 웃음소리였다. 자신이 소리지르는 걸 좋아했다는 사실을 금방 잊겠지. 아이들은 너무 빨리 자라니까 말이다. 나는 채집하는 마음으로 옆집 문 앞에 서서 아이의 고성을 오래 들었다.
요조 가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