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이 향년 90세로 선종했다. 고인은 고 김수환 추기경에 이은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이었다. 서울대교구장으로 치러지는 정 추기경 장례는 주교좌성당인 명동대성당에서 5일장으로 진행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지난 2월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오던 정 추기경이 전날 밤 10시 15분 선종했다고 28일 밝혔다.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아주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다”면서 “오래전부터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자주 말씀하셨고 이 말씀이 마지막 말씀이었다”고 전했다.
허 신부는 이어 “어제 선종 후 서울성모병원에서 양석우 교수 집도로 각막 기증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며 “정 추기경은 노화로 맞게 되는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하고 싶다며 2018년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서명하셨고, 2006년에 서명한 사후 각막 기증이 잘 될 수 있도록 의료진에게 특별히 부탁하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추기경이 지난달 필요한 곳에 재산을 모두 기부했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SNS에 올린 글에서 “한국 천주교의 큰 언덕이며 나라의 어른이신 추기경님이 우리 곁을 떠나 하늘나라에 드셨다”며 “참으로 온화하고 인자한 어른이셨다”고 회고했다.
박병석 국회의장, 홍남기 국무총리 대행, 김부겸 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국민의힘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 오세훈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여야 정치인들은 줄줄이 명동성당을 찾아 조문했다.
종교계도 일제히 애도 메시지를 발표했다. 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대표회장 명의 보도자료에서 “생명과 가정의 가치를 소중히 지키려는 생명 운동으로 천주교회를 이끌어오셨으며, 장기기증으로 본이 되는 삶을 마무리하셨다”고 평가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행복을 강조한 추기경의 마지막 인사를 가슴에 깊이 새기고 모든 이가 존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도 추도문을 내고 “평소 교회가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바라셨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복지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셨다”고 안타까워했다.
고인은 1931년 서울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6·25전쟁의 참상을 겪은 뒤 사제가 되기로 하고 54년 서울 대신학교에 입학, 61년 3월 사제품을 받았다. 만 39세 때인 70년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최연소 주교로 서품됐다. 28년간 청주교구장으로 봉직한 그는 98년 대주교로 승품하며 서울대교구장으로 자리를 옮겨 14년간 교구를 대표했다. 2006년 2월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추기경에 임명됐다.
서울대교구는 정 추기경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에게 위원장을 맡겼다. 빈소가 마련된 명동대성당에서는 이날부터 사흘간 신자와 시민들의 조문을 받는다. 장례미사는 5월 1일 오전 10시 봉헌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