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지보(無價之寶·가격을 매길 수 없는 보물).”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평생 모은 컬렉션이 국민 품으로 돌아오게 되자 미술계는 그 가치와 의미를 이같이 정의했다.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불상과 고서화 등 고미술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회화·조각 등 근현대 미술품과 서양 미술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됐다. 컬렉션의 가치는 2조5000억∼3조원으로 추산된다. 올해 국립현대미술관(48억원)과 국립중앙박물관(39억7000만원)의 작품 구입 예산을 합쳐도 90억원이 안된다. 이번 기증으로 “양대 국립기관이 300년에 걸쳐 사야 할 미술품을 한 번에 확보하는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고미술품은 2만1600점(9797건)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4만여점의 절반에 맞먹는 규모다. 기증품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등 국보 14건,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秋聲賦圖·보물 1393호) 및 고려불화 ‘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 등 보물 46건을 포함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28일 “인왕제색도를 포함해 역대급 규모가 들어왔다”며 기뻐했다. 조선 후기 화가 겸재의 말년 득의작인 ‘인왕제색도’는 한국 회화사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100억원대로 추산된다.
‘청자상감모란문발우 및 접시’(보물 1039호) 분청사기음각수조문편병(보물 1069호) 등 최상급 도자기 6건도 기증돼 삼성미술관 리움이나 호림박물관에 비해 약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의 도자기 분야 소장품도 보완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단박에 소장품 1만점 시대를 열었다. 현재 8700여점을 소장 중인데 1400여점을 기증받았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출신 A씨는 “과거 수장고를 정리하면서 우리는 언제 1만점을 채우나 했는데 그 꿈이 이뤄졌다”며 놀라워했다.
한국 근현대 회회사의 대표작이 대거 포함됐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황소’ 등이다. 박수근은 3, 4호짜리 소품을 주로 그려 왔는데 ‘절구질하는 여인’(130×27㎝)은 이례적으로 60호짜리 대작이다. 박수근의 20호 크기 ‘빨래터’(37×72㎝)가 2007년 45억2000만원에 낙찰된 걸 감안하면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3배인 135억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대구미술관, 광양 전남도립미술관, 강원도 양구 박수근미술관, 제주도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등으로 간 근현대 미술품 143점은 작가의 출신 및 활동 기반 등을 감안해 기증기관이 결정됐다.
최고의 빅뉴스는 모네, 샤갈, 미로, 피카소, 르누아르 등 19세기 말∼20세기 초 인상주의 이후 서양 근대 걸작이 대거 기증된 것이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책 읽는 여인’ 등이 포함됐다. 모네의 수련 작품은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이번 기증품과 비슷한 크기가 940억원에 낙찰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앤디 워홀, 장 미셸 바스키아 등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양미술 작가 작품은 소량 소장하고 있지만 서양 근대 컬렉션은 공백이었다. 이를 메우게 돼 미술애호가들이 프랑스 오르세미술관급 작품을 국내에서 즐길 수 있게 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6월부터 기증품을 선별한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특별공개전’을 갖는 데 이어 10월에는 대표 명품만 추려 전시를 갖는다. 국립현대미술관도 8월 서울관에서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명품전’을 개최한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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