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조 남긴 이건희, 60% 환원한 삼성家

입력 2021-04-29 04:01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수집품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이 회장 유족은 상속세 납부 시한을 앞둔 28일 유산 상속 방안을 공개하면서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리는 문화재와 미술품 등 2만3000여점을 국립기관 등에 기증한다고 밝혔다. 삼성 제공

“상속세는 정직하게 계산해야 한다.”

고(故) 이건희(사진) 삼성그룹 회장은 생전에 상속세를 정직하게 사회에 돌려주는 게 기업의 의무라는 입장을 밝혀 왔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친께서는 ‘살아생전에는 절세도 하고 낭비를 줄여 부를 축적해야 하나, 사람의 최종 마무리는 상속세로 나타난다’고 말했다”면서 “국민이 납득할 세금을 내라고 했다”고 말했다.


유족은 고인의 유지에 따라 이 회장 재산의 60%를 사회에 환원키로 했다. 주식·부동산 등에 대한 상속세 12조원, 국보급 미술작품 등 2만3000여점의 미술품 기증 등이 포함됐다. 2008년 특검 수사 이후 약속한 사재 출연은 1조원 규모의 의료분야 기부로 화답했다.

이 회장 유족은 28일 이 같은 내용의 유산 상속 방안을 발표했다. 유산은 삼성전자 등 주식 19조원, 미술작품 2조5000억~3조원, 한남동 자택 등 부동산을 더해 총 26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 낸 이 회장이 사후에 세금과 기부를 통해 마지막 사회공헌을 실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삼성그룹 시가총액은 1987년 1조원에서 지난해 682조원으로 700배 가까이 성장했다.

유족이 낼 상속세는 지난해 우리나라 상속세 총액 3조9000억원보다 3배 이상 많은 액수로 국내 역사상 최대 규모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유족이 낸 상속세보다 3배나 많아 전 세계에서도 전례 없는 규모라는 평가다.

상속세와 별도로 1조원을 의료발전을 위해 기부키로 했다. 이 회장이 2008년 특검 수사 이후 밝혔던 사재 출연 약속을 지킨 것으로 해석된다. 유족들은 “감염병 극복을 위한 시스템 구축이 고인의 유지를 따르며 우리 사회의 최대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염병 극복에 7000억원을 지원하며 이 중 5000억원은 감염병 전문병원인 ‘중앙감염병 전문병원’ 건립에 투입된다. 소아암과 희귀질환 어린이 지원에도 3000억원을 지원한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리는 미술작품 중 2만3000여점은 국립기관 등에 기증한다. 기증 미술품은 상속세 부과 대상에서 빠진다. 유족들은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는 이 회장의 평소 생각을 기리는 차원에서 기증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중섭의 '황소'. 삼성 제공

이 회장이 미술사적 가치를 우선해 모았던 고미술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세계적인 서양 작가들의 유명 작품과 한국 대표 근대 미술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각각 기증한다. 또 제주 이중섭미술관, 강원 박수근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지방 미술관 5곳과 서울대 등에도 유명 작품 143점을 기증하기로 했다. 지정문화재 및 예술적·사료적 가치가 높은 중요 미술품의 대규모 국가 기증은 사실상 국내 최초다. 유족 간에 주식 지분을 어떻게 나눌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유족들은 상속세를 5년에 걸쳐 6회에 나눠 내기로 했다.

김준엽 김지애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