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마만큼 더 높은 음역대를 낼 수 있을까. 자신이 부를 수 있는 음역대 높이보다 두 옥타브 높은 소리를 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산상수훈 또는 평지수훈(누가)으로 불리는 오늘 말씀은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 가르침은 우리가 따라 부를 수 있는 음역대의 범위를 벗어나 있습니다. 정교하게 조율된 피아노, 혹은 바이올린에서나 찾을 수 있는 높은 음표입니다.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예수님의 가르침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31절 말씀과 연결돼 흔히 ‘황금률’이라고 부릅니다. 황금은 인류의 오랜 문명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물질로 인정받아 왔습니다. 황금률은 모든 가치 중에 최고의 위치에 있는 것을 일컬을 때 지칭하는 말입니다.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들도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한 도덕적 규범을 갖고 있습니다. 대부분 법과 규칙은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 하는 부정적 형식의 금지 규정입니다. 금지 규정을 담고 있는 도덕적 교훈을 ‘실버 룰’(Silver rule)이라고 합니다. 은도 귀한 보물이지만 황금만큼은 아닙니다.
방어적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과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하는 것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은 감정적 영역이지만,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사랑은 적극적 행동을 의미하는 동사입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36절)는 말씀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복음의 가르침을 해석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우리의 유혹을 물리치는 지혜입니다. 또한 불의를 폭로하는 가장 강력한 비폭력적 방법입니다.
사람들은 교회가 다툼이나 갈등 없는 천국과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를 방주에 비유하는 사람들은 “교회는 방주와 같다. 밖에 거센 폭풍만 없다면 나는 방주 안에 가득한 악취를 참을 수 없어 뛰쳐나갔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은 갈등이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살고, 싸우며 갈등을 풀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다툼을 피하고자 우리는 갈등을 빚는 사람을 외면하고 거리를 둡니다. 하지만 하나님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거리 두기’는 우리를 지옥에서 살아가게 합니다. 지옥은 땅속 깊은 공간의 개념이 아닌 하나님과의 거리에 관한 것입니다.
불타는 지옥에 떨어진 부자가 “나사로에게 물을 들려 제게 보내 달라”고 간청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건너오지도 건너가지도 못한다”고 말씀하신 그만큼의 거리입니다. 반면 천국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사랑 밖에 아무것도 가로막는 것이 없는 일치된 상태입니다. 악에 굴복하는 것은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마음입니다. 오직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완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를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과 다른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옷을 입은 우리는 단지 예배의 참관자가 아니라 주님의 제자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박성순 신부(성공회 대학로교회)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성공회 대학로교회는 ‘큰 교회’가 되려고 하기보다 ‘교회다운 교회’ 가 되고자 합니다. 62년 교회 역사에서 세상의 어두운 곳을 살피고 이웃을 환대하며 이 땅의 정의와 평화를 회복하는 데 역할을 감당해왔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쓰임 받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