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홍성훈 (10) 열세 번째 작품 ‘산수화오르겔’로 한국적 모습 완성

입력 2021-04-30 03:03
김일현 국수교회 목사가 2014년 9월 경기도 양평 국수교회에서 파이프오르간 ‘산수화오르겔’의 봉헌식을 진행하고 있다.

파이프오르간을 한 대씩 만들면서 한국적 파이프오르간의 방향을 조금씩 잡아갔다. 열세 번째 작품인 양평 국수교회의 파이프오르간은 그 모습이 구체적으로 완성된 대표적인 예이다.

김일현 국수교회 목사님은 파이프오르간을 짓기 전에도 음악에 대한 비전을 품고 연간 20~30회씩 지역 주민을 위한 음악회를 열어왔다. 김 목사님은 교회를 새로 세우기 전인 2001년부터 나에게 파이프오르간을 짓겠다는 뜻을 밝혔다. 양평에 가로등이 제대로 갖춰진 곳도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는 “우리 시골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김 목사님은 꾸준히 파이프오르간에 대한 비전을 꿈꿨다. 2005년 12월엔 국수교회의 한 장로님이, 소유하고 있는 경기도 양평 땅의 일부를 제작실로 쓸 수 있도록 흔쾌히 내주셨다. 물론 제작비 일부를 드리긴 했으나 선교의 일환이자 하나님께 헌신하는 마음으로 하신 일이었다. 김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만들고 싶은 파이프오르간의 모습도 구체적으로 형상화됐다. 본격적으로 제작을 시작한 건 10여년이 지난 2012년이었다.

목사님은 나에게 파이프오르간 제작에 대한 전권을 줬다. 어떤 파이프오르간이 적합할지 고민하는 데에만 수년에 걸친 시간이 들었다. 어느 날 문득 퇴근길 어둑할 때 눈에 들어온 양평의 자연이 뇌리에 꽂혔다. 하늘엔 촘촘하게 별이 박혀있었고 어두운 하늘에 산의 실루엣이 또렷하게 그려져 있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그중에서도 한국의 자연 그대로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외관뿐만 아니라 소리도 우리의 소리에 가깝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물이 국수교회의 ‘산수화오르겔’이다.

산수화오르겔은 파이프오르간을 왜 한국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준 작품이다. 파이프오르간은 오랫동안 유럽에서 만들어지고 연주돼왔다. 소리도 당연히 유럽 사람들의 정서에 맞게 발전해 온 것이다. 유럽의 영적 부흥을 이끈 바흐와 같은 음악가들은 자신이 표현하고 싶었던 하늘의 세계를 파이프오르간으로 연주했다. ‘음악 설교’라는 말처럼 그런 음악은 그 자체로 말씀이고, 거기서 받는 감동은 ‘영성’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런 파이프오르간을 우리의 정서에 맞게 발전시킨다면 어떨까. 우리가 민요나 타령을 듣고 왜 좋은지는 모르지만 ‘얼쑤’하는 추임새가 절로 나오는 것처럼 하늘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악기가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면 영성도 커지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한국엔 파이프오르간이 많지 않고 그 소리가 생소한 사람들도 많다. 내가 꿈꾸는 것처럼 이 소리가 우리에게 익숙한 소리가 되기까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작은 시골마을에서 울려 퍼지는 파이프오르간 소리와 거기서 감동을 받는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 미래가 반드시 온다는 것을 믿게 됐다. 영적인 소리야말로 사탄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가장 큰 무기다. 천상의 소리로 우리를 무장시키고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임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정리=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