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80년 묵은 악마의 편지

입력 2021-04-29 03:03

모든 것의 시작엔 나름의 뒷이야기가 있다지만 고전 혹은 베스트셀러로 알려진 책은 예기치 못한 이유로 세상에 등장한 경우가 특히 많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쓰인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도 저자가 설교 시간에 딴생각하다 탄생한 작품이다. 그날따라 루이스가 교회에서 공상의 타래를 풀어놓은 요인이 몇몇 있긴 했다. 한동안 교회에 못 나갈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았고, 금요일 밤 라디오로 들었던 히틀러의 광기 어린 연설이 기억에 맴돌았다. 게다가 영국군이 프랑스에서 독일군에 의해 쫓겨나듯 탈출한 됭케르크 작전 직후라 루이스뿐 아니라 대부분 영국인이 평화롭게 예배를 드릴 심리적 여유가 없었다.

설교 시간의 딴생각마저 선하게 사용하는 하나님의 유머에 대한 응답이랄까. 루이스는 갑자기 떠오른 ‘악마가 악마에게 편지를 쓴다면’이라는 발상을 흥미롭게 발전시킨다. 그는 교활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악마 웜우드에게 어떻게 성공적인 유혹자가 될 수 있을지를 편지로 조언한다는 설정으로 약 9개월 동안 31통의 편지로 구성된 원고를 썼다. 루이스는 완성된 원고를 성공회 주간지 ‘가디언’에 보냈고, 1941년 5월 2일부터 11월 28일까지 편지가 매주 하나씩 공개됐다. 눈치챈 독자도 있겠지만 이 칼럼이 신문에 실리고 3일 후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세상에 등장한 지 80주년이 된다.

아무리 허구이기는 해도 악마가 쓴 편지가 정기적으로 기독교 언론에 등장하자 그에 담긴 신학이나 기괴한 설정이 껄끄럽다는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찬사와 호응이 부정적 평가를 압도했다. 인간성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 풍자와 유머가 가득한 신학적 우화, 세속화된 유럽의 사회문화적 상황에 대한 비판, 악의 본질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라는 호평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의 편지’라는 형식의 패러디 작품도 적잖게 나왔다.

세대를 거듭하며 사랑받는 작품이 대개 그렇듯, 독자에 따라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발견하는 매력은 각기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가장 특이한 공헌은 악마를 ‘행정의 세계’에 위치시킨 데 있다고 본다. 사무실 책상에서 펜대를 굴리는 악마라니, 이 얼마나 기발한 발상의 전환인가.

루이스가 그려낸 악마는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하고, 업적에 목매달며 실패에 대한 처벌을 두려워하는 존재다. 이러한 악마의 영역을 풍자하는 이미지는 흥미롭게도 관료조직이다. 여러 사람의 삶을 곤경에 처하게 할 계획서에 고급 만년필로 서명하고, 부하직원에게 비열한 지시마저 점잖게 내린다. 말쑥한 정장을 입고 담소를 나누며 티타임을 갖는 관료 사회는 악의 기만성과 평범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배경이 된다. 루이스가 직감한 이러한 위험은 당시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독일 관료에 의해 현실화됐다.

실제 악의 폭력성은 제도로 효율성을 추구하려는 순진한 욕망 뒤에 숨은 경우가 많다. 오늘날 우리도 사람을 서류의 신상정보 몇 줄로 단순화하고, 타인의 생명을 조종의 대상으로 보며, 양심의 목소리 대신 결재라인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도덕적 불감증이 일상화된 사회에 살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세계 곳곳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악이 책상에 놓인 결재서류처럼 진부한 곳에서 교묘히 작동한다는 보편적 경험을 대변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인류를 타락시킬 비법을 전수하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루이스의 기지로 세상에 공개된 지 80주년 된 이 시점을 계기로 평범한 모습을 하고 퍼져있는 악이 없나 주위를 한번 되돌아봤으면 한다. 루이스가 악마를 묘사한 방식에 동의하든 안 하든, 이미 익숙해져 버린 악에 대항하며 내 삶에서 무언가 해야 한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김진혁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