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노선이 없다. 그저 ‘월화수목금금금’ 일하고 매일 심야에 퇴근한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을 잘 아는 한 법조계 인사는 공수처 출범 이후 김 처장의 태도를 “실용적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하다”며 “순수한 편”이라고 말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면담 과정에 관용차를 제공해 ‘황제조사’ 논란이 빚어졌지만, 이를 김 처장의 정치적 편향으로까지 해석하는 건 과하다는 얘기였다. 그는 “수사 경험이 부족해 스텝이 삐끗한 정도”라고 했다.
1일로 공수처 출범 100일이 지났지만 김 처장의 휴식이나 ‘1호 사건’ 수사는 없었다. 대신 그 사이 있었던 일은 수사처검사·수사관 선발, 이첩 기준을 둘러싼 공방 등이었다. 법조계 인사들은 공수처의 100일 속에서 몇 가지 걱정거리를 찾았다. 그러면서도 공수처가 ‘뿌리를 내리는’ 중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한 중견 법조인은 “헌법재판소도 처음 출범할 때 7개월간은 아무런 재판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원부터 다 채워야
김 처장이 “13명이면 충분하다”고 말했지만 법조계의 중론과는 거리가 있다. 진실 발견이 까다로운 권력형 비리로서의 고위공직자 범죄 성격을 고려하면, 현재 공수처의 인적 구성은 전체 규모와 면면이 부족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시선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처장 차장을 포함한) 25명 정원 자체를 늘리려면 공수처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수사 경력이 풍부한 이들을 정원까지 충원하는 것은 김 처장의 운영으로서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자릿수 검사로도 여러 시·군을 관할하는 검찰 지청이 있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장 교수는 “고위공직자가 결부되면 사건 자체가 크다”며 수사처검사 충원을 급선무로 꼽았다.
이러한 우려는 과거 ‘게이트’로 불린 사건들의 수사 전례에 근거해 제기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에는 ‘특수통’ 소리를 듣는 검사들이 20명 넘게 투입됐다. 박영수특검에서 활약한 파견검사도 특검보를 제외하고 20명이었다. 검찰에서는 “13명 모두가 한 사건 수사에 매달릴 수도 없을 것”이라는 경험담 섞인 관측이 나온다. 수사처검사 일부는 법정에서 또 다른 고위공직자의 변호인단에 맞서 공소유지 업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수처법을 손질해 구성원의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수사처검사들에게는 애초 ‘변호사 자격 10년 이상’ ‘재판·수사 또는 조사업무 실무를 5년 이상 수행’의 경력이 요구됐었다. 이것은 지난해 말 공수처법 개정 과정에서 ‘7년 이상 변호사 자격’으로 완화됐다.
권한 다툼 아닌 협력을
검찰 안팎에서는 사건이 여러 수사기관을 넘나들면서도 수사 성과가 있었던 사례로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을 꼽는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는 박영수특검이 출범하자 종전까지 수사했던 3개 대기업 관련 자료를 모두 넘겼고, 이는 특검이 청와대와 대기업 간 유착을 확인하는 열쇠가 됐다. 특검은 활동 종료 때 수사 결과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최종 판단을 검찰에 다시 넘겼고,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을 구속 기소했다. 이첩이 서로의 성과로 이어진 사례다.
공수처가 검경과의 사이에서 염두에 둘 것도 이러한 매끄러운 소통이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2월 김 처장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찾았을 때, 둘은 “협조를 잘하자”는 말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후 공수처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을 놓고 검찰과 많은 이견을 확인했다. “검찰이 수사해도 기소 여부는 다시 공수처가 판단하겠다”는 ‘유보부 이첩’ 기조는 정치권에서 ‘사건 가로채기’ 시도로 해석되기도 했다.
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과거 검찰이 불신 받았던 방향대로 공수처가 가려는 것인지 안타깝다. 권한 다툼을 하기보다 직접수사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첩 때마다 수사기관이 수사의 정도, 적합성을 중심으로 설득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검경 수사권 조정은 청와대에서 컨트롤했다”며 “공수처의 안착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중재자 역할을 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단수 추천 속의 초심
승 연구위원은 “어떤 사건을 ‘1호 사건’으로 규정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공수처에 고소고발한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전부인 사건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첫 수사에 지나친 상징성을 부여하기보다는 공소시효가 다가온 사건들부터 신속한 결론들을 내려 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월 21일 정식 출범 이후 지난 23일까지 공수처에는 고소고발 등 총 966건의 사건이 접수됐다.
법조계는 김 처장에게서 정치적 편향성이 드러나지는 않는다고 본다. 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공수처 차장을 복수가 아니라 단수 추천한 점, 수사처검사를 정원 이상으로 추천하지 않았던 점 등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낙점하는 인사들로 진용을 꾸리기보다는 소신을 보이는 길을 택했다는 평가였다. 이 관계자는 “초심이 지켜지면서, 공수처가 잘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