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주소가 주는 편견과 오해가 있다. 경북 김천시 남면 옥산리. 주소만 보면 논밭이 있는 시골마을이 떠오른다. 그곳에 교회가 있다. 오래된 건물에 나이 지긋한 성도 수십 명이 예배드리는 시골교회 이미지가 그려진다.
옥산리에 있는 은혜드림교회는 그런 편견과 오해를 보기 좋게 깬다. 지난 25일 주일예배엔 노년의 어르신부터 젖먹이 아기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방역수칙을 지키며 예배 드렸다.
이 교회 출석성도 800여명의 평균 나이는 40세다. 성도도 젊지만 교회 건물도 젊다. 2015년 건축한 교회 건물은 세련미를 갖췄지만 교회 앞 논밭과도 어우러진다. 코로나19로 잠시 문을 닫았지만 1층에 카페도 있다.
그렇다면 근사한 교회 건물과 카페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을까. 32년째 출석 중인 50대 집사부터 교회에 등록한 지 3년차인 30대 집사까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곤 입을 맞춘 듯 특별한 프로그램 때문이 아니라 ‘예배와 말씀 중심’ 덕이라고 말했다. 복음화율 8%에 불과한 지역적 한계와 코로나19라는 상황적 한계에도 성도는 꾸준히 늘었다. 이날도 4명이 새신자로 등록했다.
은혜드림교회는 1988년 김천시 평화동 상가 건물에서 김천은혜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성도 50여명의 작은 교회는 2002년 1월 최인선(사진) 목사가 부임한 뒤 변화를 거듭했다.
최 목사는 침례신학대에 입학해 연세대에서 목회학 석사과정을 거친 뒤 서울 강남구 강남중앙침례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했다. 1년 뒤 최 목사는 결단을 내렸다. 풀타임 사역자 요청을 거절하고 서울의 큰 교회를 찾아다녔다.
“젊을 때 아니면 못한다는 생각으로 주일마다 당시 주목받던 교회들에 갔어요. 일종의 ‘벤치마킹’이었어요. 말씀만 좋으면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설교를 들으니 달랐어요. 교회 안 현수막이나 서점의 위치에도 이유가 있더라고요. 왜 대형교회인지 알았어요.”
무엇보다 시대적 사명을 갖고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주려는 목회자들의 처절함을 봤다. 벤치마킹의 시간을 보낼 때 은혜드림교회로부터 청빙요청이 왔다. 목회자의 ‘처절함’을 마음에 품고 도착한 김천에서 최 목사는 “중·소도시 교회도 건강하게 성숙할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는 비전을 세웠다. 감격이 있는 예배, 행복이 있는 교회, 꿈이 있는 이 땅 등 3가지 모토도 정했다. 선행과제는 교회의 ‘건강한 성장’이었다.
최 목사는 “좋은 프로그램도 성도 50여명의 작은 교회에선 운용할 수 없었다”며 “예배를 통해 건강하게 성장하는 게 필요했다”고 말했다.
3년간 예배하며 말씀만 전했다. 최 목사는 “획기적인 성장은 없었지만 감사하게도 성도들은 나를 기다려줬다”고 했다.
말씀과 예배로 기초체력을 키우자 사람들이 교회를 찾았다. 2005년부터 계획한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이다. 릭 워렌 목사가 미국 캘리포니아 새들백교회에서 진행한 영적 성장 캠페인이다. 소그룹 모임인 사랑방도 만들었다.
그러나 최 목사는 당시 40일 캠페인을 “실패”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다. 실패의 이유를 찾았다. 독일의 신학자 크리스천 슈바르츠의 책 ‘자연적 교회성장’은 원리가 좋아도 방법이 틀리면 소용없다는 답을 제시했다. 캘리포니아 상황에 맞춘 40일 캠페인은 김천의 성도들에겐 맞지 않았다. 바로 성도 맞춤형 교재와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지금도 사용 중이다.
“주일예배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면 주중 사랑방 모임에서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각자의 처소에서 일주일 동안 같은 메시지로 묵상합니다.”
이날 예배에서 최 목사는 ‘목적이 있는 삶’(출애굽기 8:25~28)을 메시지로 전했다. 예배 후 사랑방 모임과 개인 묵상에 사용하도록 유인물을 나눠줬다.
어느새 3가지 모토는 실현됐다. 이종순(55) 집사는 “교회는 말씀 위주였고 예배에 충실했다. 그랬더니 화평해졌다”며 “교회 건축 때도 성도들끼리 분쟁은 없었다”고 말했다. 1층 카페 ‘앙시’를 가리키면서는 “벽의 페인트칠, 조명 설치도 성도들이 한 것”이라고 전했다.
예배와 말씀 중심의 프로그램은 코로나19 등 위기에도 힘을 발휘했다. 지난해 10월 ‘우리가족 신앙회복 프로젝트-리홈워십’도 그랬다. 교회는 코로나19로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집과 예배 공간의 구분이 사라진 점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했다. 리홈워십을 시작하면서 붉은 색 성막포를 각 가정에 제공했다.
곽혜정(39) 집사는 “성막포를 벽에 거는 순간 우리 집은 예배의 장소가 됐다”면서 “초등학생인 두 아이는 예배의 의미를 알게 됐고 남편도 예배에 능동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교회는 다음 달 2일 창립 33주년을 맞는다. 최 목사는 20년 전 부임할 때 세운 비전을 이뤘을까.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고는 경기도 성남시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이 목사는 2018년 추수감사절 특별집회에서 특강하고 돌아갔다. 다음 날 최 목사는 이 목사의 교회 부교역자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 목사가 “젊은 목사가 촌에서 교회를 일궜다. 놀랍다”는 얘기를 했다며 어떻게 사역했는지 물었다. 질문을 듣는 순간 최 목사는 “비전대로 살아가는 삶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 목사의 다음 비전은 무엇일까.
“복음화율 8%인 이곳에 교회로 건실히 서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예배의 삶 속에서 성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지역 안에서 이웃도 섬길 수 있었으면 합니다.”
김천=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웰컴 투 처치]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