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쇼(아카데미 시상식)의 스타는 윤여정이었다. 윤여정은 수상소감을 통해 왜 그가 최근의 영화제에서 거의 모든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싹쓸이했는지, 그의 수상을 지켜보는 일이 왜 그렇게 즐거운지를 입증했다.”
미국 시사잡지 애틀랜틱은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이튿날인 26일 이렇게 보도했다.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올린 윤여정은 세계적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영화에서 보여준 내공 있는 연기, 예의를 갖추면서도 직설적이고 유머러스한 수상소감, 영화제 스타일링까지 모든 것이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가 ‘윤며들었다’.
윤여정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보여준 ‘토크쇼’를 연상시키는 입담은 SNS에서 화제가 됐다. 뉴욕타임스(NYT) 기자 카일 뷰캐넌은 자신의 트위터에 “내년 오스카 진행은 윤여정에게”라는 글을 남겼다.
윤여정이 여우조연상 후보에 함께 오른 미국 배우 글렌 클로즈를 치켜세우고 “우리는 모두 자신의 영화에서 승리했다. 내가 운이 더 좋았을 뿐”이라고 했을 때 수상하지 못한 다른 후보들도 감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여우조연상 후보였던 올리비아 콜맨이 활짝 웃는 모습, 어맨다 사이프리드가 윤여정을 향해 “사랑한다(I love her)”고 외치는 모습 등은 생중계 화면에 잡히며 화제가 됐다.
시상자로 나선 배우 브래드 피트에겐 “드디어 만났다. 영화 찍을 때 어디 있었느냐”고 애정 어린 원망도 퍼부었다. 여성 잡지 인스타일은 “윤여정은 피트를 놀린 뒤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트위터 등에는 “윤여정이 최고의 수상소감을 이야기했다” “모든 수상자를 대신해 윤여정이 연설해야 했다” “그녀의 연설은 금(金)이다” “윤여정은 국제적인 보물”이라는 반응이 올라왔다.
CNN방송은 윤여정의 수상소감 주요 대목을 편집한 영상을 홈페이지에 게재하며 윤여정이 “쇼를 훔친다”고 전했다. 영화 ‘미나리’에서 신스틸러였던 윤여정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쇼스틸러’였다는 의미다.
여성잡지 더리스트는 보디랭귀지 전문가 마크 보든의 분석을 전했다. 그는 “윤여정의 수상소감과 제스처는 리듬에 맞춰 일치했다”며 “그는 분명히 뛰어난 코믹 연기자다. 쇼에서 많은 웃음을 선사했다”고 말했다. 애틀랜틱은 “윤여정의 농담은 아시아인과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들의 성과를 간과해 온 아카데미의 긴 역사에 손짓한 것”이라며 “미국에서 윤여정의 명성은 새롭지만, 그가 가진 재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고 극찬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보여준 스타일링에 대한 관심도 컸다. 윤여정은 은발과 멋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단아한 디자인의 남색 롱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에 등장했다. 이 드레스는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은 두바이 기반 브랜드 ‘마마르할림’의 제품으로, 가격은 100만~300만원 대로 알려졌다. 윤여정은 드레스와 함께 로저 비비에의 클러치, 쇼파드의 귀고리, 보테가 베네타의 구두 등으로 세련된 스타일을 완성해 주목받았다.
국내 배우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배우들의 축하 메시지도 계속됐다. 배우 김혜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윤여정이 과거 tvN 예능 ‘꽃보다 누나’에서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라고 했던 대사를 인용하면서 축하했다. 배우 이병헌은 인스타그램에 윤여정의 수상 사진을 올리며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라고 남겼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는 트위터에 “수상을 축하한다”고 남겼다.
윤여정이 가진 솔직함 자신감 배려 유머 등은 MZ세대에도 어필하고 있다. 이들은 윤여정이 곧 ‘시대가 필요로 하는 어른’이라며 환호한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기 전부터 윤여정은 20~30대 배우들이 주로 맡던 맥주와 쇼핑 애플리케이션 광고 모델로 발탁됐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세대별로 좋아하는 인간상이 다른데 젊은 층은 ‘꼰대의 정반대’인 윤여정의 모습에 호응한다”면서 “윤여정은 자기 할 말을 하면서 상대방을 기분 나쁘지 않게 배려하는 소통 능력을 갖췄고 나이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도전한다. 여배우로서 최고의 위치에 있지만 예능프로그램에도 출연해 대중이 친근하게 느낀다”고 분석했다. 또 “연기자로서 과하지 않고 편안하게 연기하면서 자기 색깔을 보여주는 게 윤여정의 특징”이라며 “수상소감에서 ‘우린 각자의 영화에서 자신의 역할을 한 승리자’라고 밝혔듯이 윤여정은 자기만의 해석을 통해 배역을 자기 옷처럼 맞춰 입는 능력이 있다”고 평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