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가 백신과 사법제도 등 중앙정부 의제를 연이어 공략하고 있다. 정부·여당이 지지부진한 문제에 적극 대응해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강점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사는 27일 페이스북에 재차 재산비례벌금제 도입을 강조하며 국민의힘과 신경전을 이어갔다. 이 지사는 “재산비례벌금, 소득비례벌금, 소득재산비례벌금, 경제력비례벌금, 일수벌금 등 명칭이 무슨 상관이겠나”며 “벌금의 실질적 공정성 확보 장치인 만큼 명칭 논쟁도 많으니 그냥 ‘공정벌금’ 어떤가”라고 했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소득과 재산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비판하자 우회 반박에 나선 것이다.
재산비례 벌금제는 2019년 당정이 약속한 사안이지만 20대 국회가 임기 만료되면서 관련 법안은 모두 폐기됐다. 이 지사는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것을 확인한 후 재산비례 벌금제 도입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사가 연일 중앙정부 의제들을 선점하는 배경에는 차기 대통령 인물상과 관련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덕장’으로 분류되고,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문 대통령과 이미지가 겹치는 것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이 지사와 가까운 의원은 “지금은 합리적인 관리나 덕이 있는 후보보다는 추진해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용장을 국민이 바란다”고 설명했다.
이 지사가 “기득권에 굴복하면 변화는 요원하다”며 힘을 실은 수술실 CCTV 설치법도 마찬가지다. 수술실 CCTV 설치법은 19대와 20대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이 폐기됐다. 이 지사는 21대 국회가 출범하자 곧바로 국회의원 전원에 편지를 보내 수술실 CCTV 법안이 통과되도록 힘을 실어 달라고 호소했다. 지난해 2월 신천지 과천본부를 전격 방문한 것도 이 지사가 중앙정부의 변화를 끌어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지사는 조만간 대선 베이스캠프 격인 ‘성장과 공정 포럼’을 발족할 예정이다. 포럼은 ‘공정성장론’을 대선 핵심 의제로 내세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 지사의 ‘중앙정치’ 행보가 대선 경선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지사의 의제 선점 이면에는 ‘정부 무능’이라는 프레임이 존재하는데, 자칫하면 여권주자가 문재인정부와 각을 세우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경기도 독자 백신 도입’ 주장이 대표적인 예다. 이 지사의 독자 백신 도입은 정세균 전 총리로부터 “중대본 회의에 나오지 않아 백신 상황을 모른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 친문 의원은 “정부가 야당으로부터 백신으로 얼마나 공격을 받고 있는데 독자 백신 얘기를 꺼내냐”며 “대권주자로서 차별화가 정부 공격이라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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