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한 사건이 너무나도 민감한 시점에 벌어졌다. 진실은 미로 속에 갇혀 있다. 첩보영화보다 더 극적인 이 사건을 두고 정반대 주장이 충돌하는 상황이다.
2019년 2월 22일 자유조선 회원들이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대사관에 진입했다. 아무 성과 없이 끝났던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닷새 전이었다.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토퍼 안(41)은 스페인 북한대사관에 진입했던 10명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유일하게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다. 스페인 사법 당국은 미국과 맺은 범죄인 인도청구조약에 따라 크리스토퍼 안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안은 미국 법정에서 스페인 송환 여부를 결정지을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지금 변호사 3명의 도움을 받으며 한편이 된 스페인 사법 당국, 미국 검찰과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자유조선은 “북한 외교관이 비밀리에 탈북을 요청했으며 북한에 남아 있는 다른 가족들의 신변 위협을 우려해 ‘위장 납치극’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북한대사관 직원들을 감금하거나 일부러 컴퓨터 등을 들고나온 것도 북한 정권이 일반적인 납치·강도사건으로 믿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 사법 당국과 미국 검찰은 “자유조선 회원들이 북한대사관 직원 4명을 대사관 내 회의실에 폭행·감금하고, 강도 행위를 통해 북한대사관 물품을 훔쳐 달아났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모든 핵심 쟁점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안은 스페인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과 관련해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됐던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다.
크리스토퍼 안은 “그들(스페인 사법당국·미국 검찰)의 주장은 모두 진실이 아니다”며 “나는 사람들이 진실을 알기 바란다”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스페인 법원의 문서들을 단독 입수했다. 크리스토퍼 안과 나눈 인터뷰 내용을 위주로 스페인 법원 문서의 기록과 비교해 보도한다.
-스페인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자유조선의 누군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일정이 있다’고 거절했는데 재차 부탁해 참여하게 됐다.”
스페인 법원 문서에 따르면 그는 뉴욕에서 비행기를 타고 22일 오전 8시10분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북한대사관 진입 약 9시간 전에 스페인 땅을 밟은 것이다.
-북한대사관 진입 작전은 언제 알았나.
“나는 마드리드에 도착한 이후 자유조선 회원들이 묵고 있던 호텔로 갔다. 거기서 (자유조선의 리더이며 한국계인) 에이드리언 홍 창으로부터 구체적인 얘기를 들었다.”
-미국 AP통신은 같은 해 3월 26일 ‘북한대사관에 들어간 자유조선 회원 중 한국 국적자 1명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한국인도 있었나.
“내 기억엔 서너 명이 한국말을 썼다. 그러나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한국 국적인지, 한국계인데 다른 나라 국적인지는 알지 못한다.”
스페인 북한대사관에 진입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주장은 엇갈린다. 스페인 법원 문서는 신분을 속이는 등 불법적으로 진입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고, 변호인 측은 북한대사관 내부의 협조로 들어갔다고 반박하고 있다.
-북한대사관 내에서 무슨 일을 했나.
“자유조선 회원들의 임무는 각각 달랐다. 일부 회원는 북한 정권이 납치라고 믿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CCTV 앞에서 쇼를 벌였다. 나는 북한대사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임무를 맡았다. 가방엔 총과 칼이 아니라 북한외교관 자녀에게 줄 캔디와 장난감들이 들어 있었다(북한대사관은 주택 기능도 겸하고 있어 당시 어린이도 대사관에 있었다). 나는 북한대사관 내 모든 직원에게 ‘걱정하지 마라. 지금 대사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다 쇼다. 이 시간이 지나면 당신들은 새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탈북을 요청한 그 외교관에게 특별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스페인 법원 문서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자유조선 회원들이 북한대사관에서 머무는 동안 대사관 직원 4명을 플라스틱 줄 등으로 결박하고 폭행했으며, 회의실에 감금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변호인들은 “스페인 수사 당국이 북한대사관 직원들의 일방적인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며 “이 주장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대사관에서 자유조선 회원들의 폭력적인 행동은 없었다는 것인가.
“우리는 사람을 살리러 북한대사관에 들어갔다. 우리의 성공과 실패에 사람의 생명이 달려 있던 순간이었다. 탈북을 요청했던 사람들만 구출한다면 절반의 성공이었다. 북한에 있는 다른 가족들의 생명까지 구해야 했다. 이번 작전에선 납치 연극이 성공해야 100% 성공이었다. 우리로서는 납치로 위장해야 하는데, 북한 외교관에게 ‘자, 갑시다’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일부러 CCTV 앞에서 쇼를 벌였다. 북한 정권이 이 화면을 볼 때를 대비해 납치처럼 보여야 했다. 우리는 납치 연극이 실패하면 ‘북한에 있는 이들의 가족이 다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정말 납치처럼 보이기 위해 애썼을 뿐이다.”
-북한대사관 안에서 특별하게 느꼈던 것은 없었나.
“대사관 건물이라는 것이 밖에서 보면 멋지지 않나. 북한대사관도 그랬다. 그런데 실내에 들어와보니 가구가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낡은 싸구려 가구들밖에 없었다. 게다가 내가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물도 없었나.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아, 이 사람들이 정말 힘들게 살았구나’ 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아, 이 사람들이 오늘만 견디면 이렇게 안 살아도 되니까 앞으로는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입 초반에는 모든 것이 자유조선의 계획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두 가지 돌발 상황이 자유조선의 발목을 잡는다.
먼저 대사관 직원의 부인이 2층에서 뛰어내렸다. 행인이 심각한 부상을 입은 여성을 발견하고 응급의료진과 동시에 경찰에 신고했다. 그 여성은 출동한 경찰에게 ‘많은 사람이 북한대사관을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스페인 경찰관 3명이 북한대사관으로 출동했다.
하지만 경찰을 맞이한 사람은 에이드리언이었다. 그는 북한 지도자 배지를 달고 태연하게 “대사관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혹시 북한 사람이 다치는 일이 있었다면 알려 달라”고 경찰을 속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 번째 돌발 상황이 터져 나왔다. 크리스토퍼 안의 설명이다.
-에이드리언이 경찰을 돌려보낸 이후 아무 일이 없었나.
“갑자기 북한대사관 안에 있는 전화기들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북한대사관 실내에 가구가 없다 보니 소리가 울려서 들렸다. 대사관에 전화가 몇 대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느낌엔 벨소리가 울리다 보니 대사관 안에 있는 모든 전화가 울리는 것 같았다. 전화를 안 받으니 전화가 끊이지 않고 계속 왔다. 그때 납치 자작극을 시도했던 북한 외교관이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북한 당국이 납치 연기를 눈치챘다고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그가 우리에게 떠날 것을 요구했다.”
스페인 법원 문서에는 자유조선 회원들이 들고 나간 북한대사관 물품 목록이 있다. 두 대의 컴퓨터와 두 개의 하드 드라이브, 두 개의 펜 드라이브(USB), 그리고 한 대의 휴대전화다.
-북한대사관 물품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자유조선의 지도부가 아니라 모르겠다. 나는 아무것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
-혹시 자유조선 회원들이 북한 핵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컴퓨터 등을 들고 나갔다고 생각하나.
“당시 자유조선 회원들이 핵 정보 등 무언가를 특별히 찾고 다닌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스페인 법원 문서에는 크리스토퍼 안과 자유조선 회원들이 오후 9시40분쯤 3대의 북한대사관 차량과 9시46분에 우버를 불러 타고 나갔다는 내용이 있는데.
“납치 자작극을 요청했던 북한 외교관이 ‘빨리 나가라’면서 북한대사관 차량 3대의 열쇠를 줘 그 차를 타고 대사관을 빠져 나갔다.”
-탈북을 원했던 사람들을 구출하지 못하고 나올 때 심정은 어땠나.
“도와드려야 하는 분들을 살리지 못했다는 슬픔이 몰려 왔다(그는 여기서 두 번째로 울먹거렸다). 북한 외교관과 그 가족들이 혹시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몰려 왔다.”
로스앤젤레스·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크리스토퍼 안 첫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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