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중반의 여배우가 오스카상을 받던 날 내 머릿속에선 느닷없이 핼리혜성이 떠올랐다. 그 별은 어느 날 갑자기 유니언스테이션에 도착한 게 아니다. 존재했고 운행했으나 긴 시간 동안 지구인들이 그 빛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을 뿐이다.
70이란 숫자 뒤에 한 글자를 추가해 읽으니 느낌이 또 달랐다. 이를테면 윤여정이 ‘70년대 중반에’ 오스카상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70년대 중반에 그는 30대 전후였을 거다. 70대에 혜성처럼 나타나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가 된 건 만시지탄일까 사필귀정일까. 아니다. 화양연화는 나이와 무관하다. 시상식에서 그는 별처럼 반짝거렸고 꽃보다 아름다웠다.
윤여정은 예능의 스타이기도 하다. 예능감이 남다르다. ‘꽃보다 누나’가 정식 예능 데뷔작이다. 배경음악으로 채택은 안 됐지만 그 프로의 주제와 어울리는 트로트 제목이 ‘내 나이가 어때서’와 ‘있을 때 잘해’다. 두 곡이 다 노래교실의 고정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덴 이유가 있다. 중장년의 응원가, 희망가로 손색이 없다. 공교롭게도 원곡 가수는 ‘꽃보다 누나’에 출연한 탤런트 고 김자옥의 부군 오승근이다. 히트곡 하나만 있어도 평생 먹고살 수 있는 가요계에서 그는 든든한 노후 보험 두 개를 든 거나 다름이 없다.
레드카펫에서 시상식장까지 윤씨 옆에는 줄곧 ‘미나리’의 주연배우 한예리가 앉았다. 후보가 아닌데도 끝까지 동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궁금했다. 왜 저렇게 착하지. 한예리가 윤여정과 동년배였어도 저런 투 샷이 가능했을까.
윤여정은 수상소감에서 “나는 경쟁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세상의 문제집에선 답이 다르다. 경쟁을 믿지 않을 수는 있어도 경쟁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윤여정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함께 오른 백전노장 글렌 클로즈도 1947년생이다. 동갑내기인 그에게 윤여정은 “내가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낮췄지만 위로가 됐을지는 의문이다. 상 받은 자 옆에는 언제나 상처받은 자가 있다. 그래서 겸손은 보석보다 찬란하다.
경쟁은 조건이 비슷할수록 흥미롭다. 나영석과 김태호는 동년배다. 1994년에 대학 신입생이었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연출한 신원호 PD도 같은 학번이다. 이 사람들은 동시대 예능PD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희망일까 선망일까. 나도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소망, 희망일 것이고 나는 할 수 없다고 여긴다면 낙망, 절망일 수 있다.
왜 예능PD를 지원하느냐고 물으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서(make pleasure)라는 게 예전의 모범답안이었는데 지금은 돈을 벌고 싶어서(make money)라고 답해도 크게 눈치 안 보는 시절이 됐다. ‘돈 벌어서 뭐하려고요’라고 물으면 ‘좋은 데 쓰려고요’라고 답하면 무난히 넘어간다. 다만 ‘좋은 데가 어딘데요’라고까지 캐물으면 곤란하다. 그건 좀 많이 나간 거다.
은하계에 뭇별들이 있는 것처럼 방송계도 마찬가지다. 프로그램이 수없이 많아도 딱히 내 작품이라고 내세울 게 없는 PD가 대다수다. 그러니 확실한 히트작이 두 개 이상인 나영석과 김태호는 예능계의 풍운아, 행운아다. ‘1박2일’과 ‘무한도전’으로 존재를 알리고 ‘꽃보다…’ ‘삼시세끼’ ‘놀면 뭐하니’로 이름을 날리더니 이제는 명실상부한 스타PD로 자리를 굳혔다.
예능에서 스타와 PD는 어떤 관계인가. 80년대만 해도 PD시스템이라는 말이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PD가 원하는 대로 출연자가 채워지던 시기였다. 90년대 들어서부터는 ‘스타시스템’이라는 말이 서서히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PD가 서태지를 캐스팅하는 게 아니라 서태지가 PD를 고르는 국면에 이른 것이다. 급기야 스타를 보유한 기획사는 PD가 아니라 방송사 사장을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다다랐다.
스타나 기획사에 빼앗긴 힘을 PD가 회복하는 길은 없을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PD도 스타가 되는 것이다. 세력이 동등하다면 갑을전쟁에서 밀리지 않고 즐거운 경쟁도 가능해질 것이다. 다만 행복해지는 건 간단한데 간단해지기가 어렵다는 말처럼 아무나 스타PD가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은 지망생들이 곱씹을 필요가 있다.
지망의 위치는 소망과 희망 사이다. 둘은 어떻게 다른가. 소망이 눈 감고 하는 기도라면 희망은 눈에 보이는 가능성이다. 노래 부르길 좋아해서 가수 되길 소망한다고 치자. 그 노래를 전문가와 일반인들이 들었다고 치자. 가창력도 호소력도 부족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치자. 결국은 희망에서 멀어지는 거다. 소망이 아무리 강력해도 그가 진입하려는 세계의 주민들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희망은 글자 그대로 희망사항에 불과해진다.
“만일 길에서 어린아이를 붙잡고 당신의 (감독이란) 직업이 뭔지 20초 이내에 짧게 설명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봉준호 감독의 질문을 유재석이나 예능PD에게 던지면 그들은 어떤 답을 내놓을까. 20초 동안 시청자를 지루하게 만들면 식은땀을 흘리는 사람, 20초 동안 시청자를 웃음 짓게 만들면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 뭐 이런 답도 나오지 않을까.
나영석과 김태호는 과녁이 동일하다. 그들은 20분 동안, 아니 120분 동안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고 싶다. 그 표적은 어떻게 기적이 되는가. 먼저 그들은 꿈을 찾아 행복을 찾아 방송사로 들어왔다. 공통적인 출발점은 ‘남들과 다르게 하기’였다. 욕먹을 각오를 한 후로 그들은 기존 PD들과 달리 자신을 프로그램 속에 과감하게 밀어 넣었다.
계산은 영리했고 계획은 성공했다. 그들은 기득권 스타(강호동 유재석)를 형제라 칭하며 자연스레 화면 속에 스며들었다. 시청자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안전망도 구축했다. 비주얼의 장점도 최대한 활용했다. 나PD의 순박함과 김PD의 독특함은 점차 후방에서 측면으로, 측면에서 전방으로 보폭을 넓혔다.
스타들과 허물없는 가족이 됨으로써 초기의 어색함은 어울림으로, 직종의 신비감은 친근감으로 변해갔다. 자가발전이란 비난은 차츰 수그러들었고 ‘발상의 전환’이 발전의 약자라는 걸 환기시켰다. 그 후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들의 연출작을 시간대별로 나열해 수상실적이나 시청률 순위를 매기는 건 지면 낭비다. 손가락으로 툭 치면 탁 나오기 때문이다. 심지어 연봉까지 적나라하게 공개된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성적표보다는 지금부터의 이정표를 그려보는 게 예능PD 지망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어느 분야나 그렇지만 실력의 동의어는 실적이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다르다. 새처럼 나는 건 상상력이지만 비행기를 만드는 건 창의력이다. 그들은 사이좋게 사는 법, 재미있게 노는 법을 다채롭게 제안, 제시한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에서 살아남는 법은 뉴스나 다큐, 드라마에서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일생을 두 번, 세 번 사는 기술은 여행과 부캐(부캐릭터)에서 나온다.
윤여정의 인생 여정도 마찬가지다. 윤식당에서 그가 미나리를 다듬는 모습엔 본캐(본캐릭터)와 부캐가 병존한다. 유재석은 복면을 쓰지 않고도 내부의 사람과 외면의 사람 사이를 즐겁게 오간다. 뭐가 진실이냐고 묻는다면 말 대신 웃음으로 답해도 무방하다. 그것이 예능이다.
인생은 짧지만 일생은 길다. 일생은 길지만 일상은 더 길다. 나영석이 그 바쁜 와중에 쓴 책 제목처럼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그것이 자서전이건 기행문이건 숨 막히는 경쟁 속에서 한 번쯤 쉼표, 느낌표, 말없음표를 찍는 시간표는 어떠한가.
스타PD가 성공한 PD일 순 있어도 행복한 PD라고 단정 짓긴 어렵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불행한 PD는 비교를 많이 하고 실패한 PD는 포기를 자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