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다니는 신자에서 신자가 교회로 세워지는 플랫폼

입력 2021-04-30 19:42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더크로스처치에서 열린 ‘온라인 구국 청년 기도회’에서 교회 청년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찬양하고 있다.

플랫폼처치는 왜 이리 와닿지 않을까. 교회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상식선에서 몇 마디 대답할 것 같은데 플랫폼처치를 설명하라면 막막해진다. 이해한 것 같지만 플랫폼처치의 모양과 형태를 제대로 표현 못 할 수 있다. 교회에 ‘플랫폼’을 덧붙일 때 플랫폼 개념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플랫폼은 이제 보편화한 개념이 됐다. 정거장, 발사대, 수영장의 다이빙 준비대 등 기존 개념보다 경제·예술·IT 플랫폼처럼 사회의 많은 분야에 적용돼 네트워크의 집단화, 가치 구조나 틀 등의 의미로 두루 쓰인다. 플랫폼이란 어떤 가치를 사고팔고 주고받으며 수요와 공급이 이뤄지는 구조와 틀, 장소와 공간을 의미한다.

플랫폼처치에서 수요자와 공급자는 누구인가. 수요자가 성도라면 공급자는 목사나 전임사역자인가. 플랫폼처치의 수요자는 생명의 가치를 찾는 그리스도인을 포함해 구원이 필요한 세상 만민이다. 공급자는 복음을 가진 모든 그리스도인이다. 플랫폼처치는 대면과 비대면, 초현실과 현실, 온·오프라인 등 모든 방법과 영역으로 진리와 생명의 가치에 대한 수요와 공급 활동을 하는 교회를 의미한다.

이제 여러 각도와 측면에서 본 플랫폼처치의 개념과 정의를 바탕으로 플랫폼처치를 적용하고자 한다. 플랫폼처치는 교회 다니는 신자에서 신자 자신이 스스로 교회가 되는 구조를 갖는다. ‘플랫폼처치의 가치는 사람에 있다’는 핵심 개념에 따라 플랫폼이 된, 한 사람이 교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 수요자요, 동시에 공급자인 구원받은 성도가 구원을 넘어 어디서든 시공을 초월해 플랫폼이 될 때 그는 ‘교회 다니는 자’에서 ‘교회가 되는 자’로 될 것이다.

성도 스스로 교회 되는 구조란 은혜를 받고 누리며 지켜내기 위해 ‘모이는 교회’로 가는 것이 아니다. 성도 자신이 교회가 되기 위해 교회를 다니며, 나아가 파송받고 교회가 되는 구조를 말한다. 은혜받는 것이 신앙 전부가 아니라 은혜를 나누는 것이 목적이 된다.

플랫폼처치는 가치와 사람을 중심으로 하고 교회개척 지향을 위한 의도적인 플랫폼이다. 플랫폼처치는 진리와 생명을 중심으로 한 본질을 핵심으로 한다. 비본질적인 것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본질을 운반할 공급자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어떤 형태로든 교회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플랫폼처치는 모든 곳에서 ‘아무나’ 교회를 개척할 수 있는 구조와 틀을 의미한다. 여기서 아무나의 의미가 중요하다. 플랫폼처치는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만 사역자이고 교회를 개척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 교회 개척을 위해 엄청난 훈련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다.

생명과 진리가 분명한 준비된 사람이 교회를 개척할 수 있는 아무나이고 플랫폼화된 한 사람이다. 즉 구원의 능력을 갖춘 모든 신자가 주님의 이름 안에서 삶의 모든 자리를 교회로 선포함으로써 모든 곳이 플랫폼이 되고 교회로 세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1세기 사도행전의 교회가 플랫폼처치의 최초 모델이라고 이야기했다. 플랫폼처치는 시공을 초월해 1세기적 영성과 문화, 구조로 21세기에 존재하는 교회다. 그러므로 플랫폼처치는 새로운 것이 아닌 성경적인 것이다. 이것이 가장 종합적인 플랫폼처치의 정의와 개념이 된다. 동시에 시공을 초월한다는 의미를 놓쳐선 안 된다.

코로나19를 전후로 교회가 존재해야 할 생태계는 시간과 장소의 개념을 뛰어넘는 상황을 요구받는 때에 이르렀다. 이제 교회는 대면과 비대면, 온·오프라인, 가상현실과 현실 등 언콘택트 시대와 4차산업혁명 시대 변화에 따른 모든 가능성을 가져야 한다. 시공을 초월한 1세기 사도행전 교회의 21세기화 교회, 이것이 플랫폼처치이다.

박호종 목사(더크로스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