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홍성훈 (9)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우리를 주께 올려주지 않을까요”

입력 2021-04-29 03:02
홍성훈 파이프오르간 제작 장인이 2004년 12월 경기도 용인 아름다운동산교회에 지은 세 번째 파이프오르간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2001년 두 번째 악기를 지은 후 나는 파이프오르간에 담고자 하는 한국적 소리의 방향을 더 구체화하게 됐다. 프랑스 로맨틱풍 소리를 바탕으로 하되, 우리 정서에 다가가기 위해 좀 더 허스키하고 중저음이 강조되는 음색을 생각했다.

하지만 순탄하게 풀리지 않았다. 한동안 또다시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처럼 주문 없이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그러던 중 2003년, 경기도 용인 아름다운동산교회의 김재남 목사님이 교회를 새로 건축하는데 파이프오르간을 짓고 싶다며 나를 찾아오셨다.

아름다운동산교회는 당시 막 건물을 건축하기 시작한 작은 개척교회였다. 시인이기도 한 김 목사님은 대학에서 국문과 교수를 하시다가 목회를 시작하셨다. 개척교회에 파이프오르간을 짓는 비용은 아무래도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처음엔 반대하는 교인도 있었다. 그러나 김 목사님의 뜻은 확고했다.

“우리 교회의 예배당을 가장 기도하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기도 소리가 울려서 나에게 들릴 정도로 공명이 있는 공간에 파이프오르간 음악이 들린다면 그 소리가 우리를 하나님께 올려주지 않을까요.”

아름다운동산교회에 파이프오르간을 짓기 전 세 가지 다짐을 했다. 한국에서 순수히 우리의 힘으로 만드는 것, 한국의 재료로 만드는 것, 그리고 우리의 소리를 접목해 만드는 것. 실제로 인천 검단의 한 목공소를 빌려서 작업자들과 함께 가능한 우리의 재료들로 직접 제작을 했다. 이는 자신과의 약속이자 앞으로 제작할 파이프오르간의 방향이 됐다.

세 번째 작품을 제작하면서 나는 파이프오르간이 단순히 교회를 아름답게 꾸미는 장식품이 아니라 그 음악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작은 교회에 지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단 한 사람이라도 건지고 그에게 하늘의 소리를 들려줄 수 있다면 이 역시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안에서 나의 사명도 되새겨 봤다. 새로운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잡초를 치우고 길을 닦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누군가는 분명 가야 할 길이다. 하나님께선 파이프오르간을 한국에 정착시키는 일을 나에게 주셨다는 확신이 점점 들었다. 불모지를 개척하는 길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이 비켜 가지 않았지만, 단순하고 긍정적인 성향의 나는 그런 고통을 비교적 잘 견뎌내고 또 쉽게 잊어버렸다. 그래서 지금까지 버티고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가면서 아름다운동산교회 교인들도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줬다. 김 목사님과 교인들의 지지 아래 2004년 파이프오르간이 완성됐다. 140석 규모의 작은 예배당이지만 불필요한 장식을 최소화하고 공명에 집중해 만들어진 공간에 울려 퍼지는 파이프오르간 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정리=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