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셋, 꿈의 무대 열리다

입력 2021-04-28 04:02
텍사스 레인저스 두 번째 투수 양현종이 27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LA 에인절스와 가진 2021시즌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홈경기 6회초에 역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텍사스 레인저스가 4-7로 뒤처진 3회초 2사 2·3루. 모든 이닝마다 난타를 당한 선발투수 조던 라일즈의 구위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라일즈는 이닝을 시작하면서 백투백홈런까지 맞았다. 급기야 크리스 우드워드 감독이 결단을 내렸다. 라일즈를 강판해 더그아웃으로 부르고, 마이너리그 대체 선수 훈련지에서 이제 막 불러들인 메이저리그 1일차 투수를 마운드에 투입했다. 바로 양현종이었다.

양현종의 데뷔 등판은 미국으로 건너가고 두 달 만에 처음으로 텍사스 메이저리그 로스터 40인에 들어간 날부터 불펜에서 몸을 풀 새도 없이 성사됐다. 중압감에 짓눌릴 수도 있지만, 양현종은 특유의 침착한 얼굴로 생애 첫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첫 상대는 에인절스 4번 타자 앤서니 렌던. 제대로 맞으면 3점까지 빼앗길 수 있는 위기에서 양현종은 90마일 안팎의 공으로 렌던의 헛스윙과 파울을 유도했다. 그리고 승부구가 된 5구째 91마일(146㎞)짜리 몸쪽 직구로 2루수 팝플라이아웃을 끌어내 대량 실점 위기를 넘겼다.

양현종은 이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을 때까지 6년 이상을 기다렸다. 양현종은 한국프로야구 KBO리그에서 ‘대투수’로 불렸지만 메이저리그 데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양현종은 16승(8패)을 쌓고 KIA 타이거즈의 간판투수로 올라선 2014시즌 KBO리그를 완주한 뒤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 시스템을 통한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다. 당시에도 양현종과 연결된 구단은 텍사스였다. 하지만 당시 KIA와 텍사스가 포스팅 금액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양현종의 첫 메이저리그 진출 시도는 무산됐다.

양현종은 2016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전환되면서 다시 메이저리그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양현종은 5할을 밑돈 그해 승률(0.455·10승 12패)을 들고 만족할 협상을 끌어내지 못했다.

KIA와 4년 계약을 끝내고 다시 FA 자격을 얻은 지난해 11월, 양현종의 세 번째 메이저리그 도전을 비관하는 의견이 많았다. 앞서 두 번의 도전에서 20대였던 양현종은 어느덧 30대 초중반이 됐고 성장 가능성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매년 일정한 성적을 약속해야 하는 불리한 조건에서 협상에 임해야 했다. 연령 상승에 따른 몸값 하락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양현종은 꿈을 좇았다. 마이너리그 강등 거부권도 포기했다. 그렇게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개장을 닷새 앞둔 지난 2월 13일 가까스로 스플릿 계약을 맺고 텍사스에 입단했다. 스플릿 계약은 메이저·마이너리거 신분에 따라 연봉을 다르게 책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양현종의 메이저리그 데뷔에 약속된 연봉·인센티브 총액은 185만 달러(약 20억5000만원)다.

초청 선수로 텍사스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양현종은 5차례 시범경기에 불펜으로 등판해 10이닝 동안 12피안타 10탈삼진 평균자책점 5.40을 기록했다. 다양한 구종으로 공을 스트라이크존에 꽂아 넣는 양현종은 우드워드 감독의 시선을 잡았다.

우드워드 감독은 27일(한국시간) 양현종을 메이저리그 로스터로 불러들이면서 “스프링캠프부터 주시해왔다”고 말했다. 양현종을 콜업 당일에 실전으로 투입한 우드워드 감독의 결단은 그 믿음의 결과였다.

양현종은 이날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에인절스와 가진 홈경기에 메이저리거로 데뷔했다. 불펜으로 등판해 선발투수보다 많은 4⅓이닝을 소화하고 5피안타(1피홈런) 2실점했다. 메이저리그 첫 피안타는 6회초 선두타자로 나온 일본의 ‘야구천재’ 오타니 쇼헤이에게 허용했다. 구속보다 제구로 승부하는 양현종에게 오타니는 기습번트로 출루에 성공했고, 후속타의 힘을 받아 홈을 밟았다.

이미 에인절스로 기울어진 승부를 뒤집지 못했지만, 양현종의 데뷔 등판은 미국 언론들로부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양현종은 경기를 마친 뒤 미국 언론과 화상 인터뷰에서 “내가 어떤 선수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첫 등판으로는 재미있게 던진 것 같다”며 “메이저리그는 꿈의 무대다. 자주 등판해 좋은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