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은 올레21길이다. 창문만 내다보고 있어도 온종일 올레꾼들을 구경하게 된다. 봄이 되자 발길이 부쩍 늘었다. 옷도 화사해지고 재잘거리는 소리, 웃음소리도 커졌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바람이 불면 말수가 줄어든다. 그 바람이 걸어가는 방향 반대편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이면 갑자기 숙연해진다. 옷깃을 여미고 몸의 중심을 앞으로 숙인 채 걷고 있으면 바람은 초속 8m 내외가 되고 있을 것이다. 자전거는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내려서 끌고 가는 게 빠르다. 그들은 올레에서 역풍을 만났다.
비라도 오면 더 힘들다. 올레에서는 바람 때문에 우산이 소용없다. 준비된 사람들은 방수 기능 비옷에 배낭 커버를 씌우고 걷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편의점에서 산 비닐 우비를 입는다. 비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지만 바람이 불면 옆에서 온다. 우비 사이로 비가 들어오고 옷은 젖는다. 제주도 비는 귀로 들어온다. 바람이나 비에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이 극기 훈련처럼 걷는 모습을 종종 본다. 나라를 구하기라도 하듯.
같은 바람이어도 뒤에서 불면 걸음은 쉽다. 자전거는 뒤에서 누군가 밀어주듯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잘 간다. 이들은 순풍을 만났다. 역풍을 맞은 이들은 제주도의 인상이 춥고 불편하다. 순풍을 탄 이들은 따사롭고 즐겁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겨울에 시베리아 기단 영향으로 대륙에서 불어오는 북서풍, 즉 하늬바람은 제주도에 도착해 한라산의 지형적 영향을 받는다. 한라산에 부딪친 바람은 동쪽으로 구좌읍과 성산읍, 서쪽으로 애월읍과 한림읍, 한경면으로 갈라진다. 이 지역은 이미 불고 있는 바람에 갈라진 바람이 보태져 강도는 커진다. 한라산 남동쪽 서귀포, 남원읍은 한라산이 북서풍을 막아 겨울에 바람이 적다. 제주도의 겨울 바람지도다.
제주지방기상청 동네예보팀이 1924년부터 2008년까지 85년간의 제주도 기후변화 경향을 분석해 2009년 보고한 지역별 겨울철 평균 풍속(m/s)은 고산(한경면) 9.7, 마라도 9.0, 가파도 7.2, 모슬포 7.2, 우도 7.1, 구좌 5.1 등으로 높고 중문 2.6, 서귀포 2.7, 남원 3.1, 제주 4.0 등으로 낮았다.
겨울바람이 북서풍만 부는 것은 아니다. 북서풍이 닷새 정도 강하게 불다 이틀 잔잔하고 이번엔 방향이 바뀌어 북동풍이 며칠 분다. 하루이틀 잔잔했다 다시 북서풍으로 바뀐다. 대체로 북서풍이 많다는 의미다. 우리 동네 구좌읍 하도리 낚싯배는 바람이 지상 기준 초속 4m 이하면 바다에 나간다. 그때 앞바다는 초속 7m 정도 된다. 겨울에는 한 달에 7~9일 정도 나간다. 지난 3월은 영등바람이 극성스러워 한 달 동안 3~4일밖에 못 나갔다. 바람이 그렇게 분다.
제주올레는 26개 코스에 ‘시작’ ‘도착’ 지점을 표시하고 있다. 그보다 기상청 예보, 또는 풍속과 풍향을 보여주는 앱을 참고해 순풍으로 진행 방향을 잡는 게 현명하다. 올레에서 역풍을 맞은 뒤 두 번 다시 제주도에 오나 봐라 하는 소리 하지 않게.
박두호(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