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도다!” 이 인상적인 외침으로 33절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 하나님의 깊으심을 헤아려 볼 수 있는 인상적인 세 가지의 질문이 등장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첫째 질문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의 마음조차 좀처럼 알기 힘든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무능력한 우리는 그 깊고 오묘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알 수 없고, 그 보이지 않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자취도 우리의 생각과 판단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하나님께서 허용해주시는 은혜의 범위 안에서만 알 수 있다. 그 은혜의 범위가 바로 말씀과 성령이다.
하나님의 계획과 그의 마음을 알고 싶은가. 이 사람, 저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감정을 자극하는 음악이 깔리고 눈길을 끄는 화면이 빠르게 지나가는 영상도 아니다. 오직 성령과 말씀이다. 성령과 말씀은 서로 배치되지 않으며 일치된 한목소리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한다. 혼란스러운 이 시대 우리는 더욱 말씀과 성령을 가까이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을 지킬 수 있다.
둘째 질문은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이다. 모사는 조언자다. 한계가 있는 사람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전문가를 포함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조언도 필요치 않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마치 “이렇게 해야 합니다. 저렇게 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할 때가 있다. 또 내 열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다고 분주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 도움이 되기보다는 하나님의 일에 방해가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크고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모사는커녕, 그 어떤 일에도 도움이 안 되는 우리를 동역자로 인정해주시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무엇으로 이 영광에 보답할 수 있겠는가. 충성과 순종밖에 없다. 자기 목소리만 높이고 진정한 일꾼이 없는 이 시대,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하나님의 일과 그 즐거움에 동참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질문은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이다. 모든 사람에겐 채워야 하는 결핍이 있다. 무언가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갈망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다. 결핍과 모자람이 없는 완전한 분이시다. 누가 하나님께 “내가 더 많으니 하나님께 먼저 드립니다. 나중에 생기면 천천히 갚으세요”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풍성하신 하나님, 모자란 것이 전혀 없으신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의 예배다. 전 우주에서 티끌보다 작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신다. 우주의 그 어떤 광대함의 크기보다 우리 예배를 더 크게 여기신다.
예배자 다윗은 어느 날 밤하늘의 달과 별을 보다가 그것을 깨달았다. “우주보다 광대하신 하나님이 나의 예배를 받으시는구나.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시는구나.” 그는 두 손을 들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이렇게 외쳤다. “이 우주에 티끌보다 못한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 크신 하나님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저를 돌보십니까.”
코로나19로 예배가 제한받고 있는 시대다. 우리 모든 것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자. 그리고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의 광대하심, 실로 깊으심으로 말미암아 “아, 나의 하나님은 위대하시구나”를 깨닫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미국 워싱턴순복음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