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윤여정 “1등 하지 말고 같이 살면 안 되나”

입력 2021-04-27 04:01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뒤 오스카 트로피를 든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윤여정은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에서 미국 아칸소주로 이민 온 한인 가정의 할머니 ‘순자’ 역을 연기했다. AFP연합뉴스

배우 윤여정(74)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이름이 불리자 긴장한 듯 떨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자세를 가다듬고 특유의 유머러스한 생존영어로 수상소감을 전했다. 감사와 겸손도 잊지 않았다. 수상작인 영화 ‘미나리’에서 연기한, 개성 있고 장난기 가득하면서도 가족을 사랑하는 할머니와 다르지 않았다.

윤여정은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한국 배우로서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은 건 처음이다.

윤여정은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에서 전형적이지 않은 할머니 ‘순자’ 연기를 통해 미국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 유력 수상 후보로 예상됐다. 윤여정은 고생하는 딸을 보면서 눈물짓는 대신 긍정적이고 유쾌한 태도로 집안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손주를 사랑하지만 응석을 받아주는 대신 짓궂은 장난을 쳤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윤여정은 ’미나리‘의 교활한 신스틸러”라며 “손주에게 장난을 치고 옛 풍습을 전해주거나 전쟁·빈곤에 대한 기억을 스며들게 하는 모습은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의 진정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윤여정은 수상소감 첫머리에 이날 시상자로 처음 만난 ‘미나리’ 제작자 배우 브래드 피트에게 농담부터 건네 웃음을 이끌어냈다. 이어 유럽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점을 언급하며 “용서하겠다”고 밝히자 폭소가 터져나왔다.

윤여정은 “스티븐 연, 한예리, 노엘 조, 앨런 김 등 미나리 식구들에게 고맙다”면서 “무엇보다 정이삭 감독이 없었으면 나는 여기 없었을 것이다. 그는 우리의 선장이자 나의 감독이었다”고 말했다. 여우조연상 후보에 함께 오른 미국 배우 글렌 클로즈를 언급하며 스스로를 낮췄다. 그는 “나는 사실 경쟁을 믿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글렌 클로즈 같은 배우와 경쟁하겠나. 우린 각자 영화에서 각자 다른 역할을 해 온 승자”라며 “이 자리에 그냥 운이 좋아 서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자신의 스크린 데뷔작인 ‘화녀’(1971년)를 연출한 고 김기영 감독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나의 첫 영화를 같이한 첫 감독인 김 감독에게 감사한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정말 기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상식 직후 LA 총영사 관저에서 특파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윤여정의 ‘소신 발언’은 빛났다. 윤여정은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최고의 순간은 없을 것이다. 나는 최고 그런 거 싫다”면서 “아카데미가 전부는 아니지 않나. 1등되는 것 하지 말고 ‘최중’(最中)이 되면 안 되나, 같이 살면 안 되나”라고 받아쳤다.

배우 또는 인간으로서 윤여정의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살던 대로 살겠다. 오스카상을 탔다고 윤여정이 김여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민폐가 되지 않을 때까지 이 일을 하다가 죽으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