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속 순자(윤여정)의 대사처럼 미나리는 습하고 약간 그늘진 곳이면 어디서든 잘 자란다. 미나리는 해충의 피해에도 강하다. 배우 윤여정의 삶은 미나리처럼 억척스러웠다. 1966년 19세 어린 나이에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그는 71년 스크린 데뷔작인 고 김기영 감독의 작품 ‘화녀’에서 파격적 연기를 선보이며 제10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상, 제8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제4회 시체스 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속편으로 제작된 영화 ‘충녀’도 흥행에 성공하면서 스타덤에 올랐으나 74년 가수 조영남과 결혼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배우 활동을 중단했다.
결혼생활은 길지 않았다. 조영남의 외도로 결혼 13년 만에 이혼하고 두 아들과 함께 귀국했다. 하지만 당시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그에게 붙은 ‘이혼녀’라는 딱지는 주홍글씨가 됐다. 윤여정은 이달 초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그땐 ‘윤여정은 이혼녀야. TV에 나와선 안 돼’라고 했다. 근데 지금은 나를 아주 좋아해 준다”면서 “이상하지만 그게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윤여정은 드라마나 영화에 비중 있는 역할로 캐스팅되지 않자 생계를 위해 단역과 조연을 가리지 않았다. 다양한 작품 경험을 통해 쌓은 연기력과 단단해진 마음은 연기에 맛과 향을 더했다. 김수현 작가의 ‘사랑이 뭐길래’(1991년) ‘목욕탕집 남자들’(1995년) 등 인기 드라마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2000년대 들어선 ‘바람난 가족’(2003년) ‘하녀’(2010년) ‘돈의 맛’(2012년) ‘고령화가족’(2013년) 등 영화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로 윤여정만의 아우라를 쌓아나갔다. ‘꽃보다 누나’ ‘윤식당’ 등 예능에서도 솔직하고 지적이면서 재치있는 캐릭터로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질긴 생명력을 가진 미나리처럼 윤여정은 일흔을 넘긴 나이에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에서 연기상을 탔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동양인 여배우로서는 63년 만의 수상”이라며 “고령의 동양인 여배우가 상을 타는 모습 자체가 많은 사람이 꿈과 가능성을 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계 배우가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건 ‘사요나라’(1957)의 우메키 미요시(일본)에 이어 두 번째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순제작비 200만 달러(약 22억원)밖에 안 되는 극저예산 영화에 출연해 직접 미국까지 가서 촬영한다는 건 엄청난 결단이었을 것”이라며 “영화를 향한 (윤여정의) 순수한 열정이 이뤄낸 성취다. 가시적 성과만이 아니라 이면에 자리한 가치관과 태도도 훌륭하다”고 치켜세웠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연기 혼을 불살라 55년 연기 인생에서 가장 큰 결실을 이뤄냈다”며 “‘기생충’이 한국영화의 높은 수준을 증명했다면 윤여정은 한국배우의 연기 또한 훌륭함을 상업영화의 중심인 할리우드에서 증명해냈다”고 말했다.
임세정 권남영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