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사려면 이사해야 하나” 동나는 보조금에 ‘좌불안석’

입력 2021-04-27 00:06

5년째 경기도에서 서울로 대중교통 출퇴근을 하는 김모(34)씨는 최근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현대자동차 전용 전기차인 아이오닉5를 구매해 오는 7월에 인도받을 예정인데 보조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통보를 받아서다.

김씨는 26일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 보조금 확인을 해보니 이미 전기 승용차는 접수가 완료된 상황이었다”고 하소연했다. ‘오는 6월쯤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이 통과되면 다시 신청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답변을 받긴 했지만 이조차 불확실한 상황이다. 여기에 보조금 1000만원이라는 거액이 걸리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국내 예비 전기차주들이 때아닌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전기차 흥행으로 올해 상반기부터 정부 보조금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지만, 반도체 수급 대란으로 차량 출고 시기가 미뤄지다 보니 당장 보조금 신청도 못 하고 마음만 졸이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보조금 신청 이후 2개월 이내 전기차가 출고되지 않으면 보조금 지급이 취소되거나 대기자로 밀리는 규정이 있어 미리 신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동차 커뮤니티에서도 보조금 관련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환경부에서 제공하는 지자체별 보조금 지원 현황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기현상까지 벌어진다. 누리꾼들은 지역마다 보조금이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 파악하는 데 여념이 없다.

기아 EV6 사전예약을 했다는 직장인 성모(34)씨는 “영업점에 문의해보니 전체 보조금 할당 대수와 맞먹는 사전예약자가 이미 아이오닉5에 몰린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보조금이 선착순 지급인 만큼 후속 출시 전기차로 서울에서 보조금을 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거란 얘기다. 그는 “주소지를 바꿔서라도 전기차를 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웃픈(웃기면서 슬픈)’ 소리도 나온다”고 전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역별 전기차 보조금 소진 속도는 천차만별이다. 같은 광역시인데도 부산은 이날 기준 보조금 접수율이 65%에 달하지만 비슷한 할당 대수를 배정받은 대구는 접수율이 20%에도 못 미친다.

지자체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미 보조금을 받은 주체는 대량으로 차를 사는 법인과 기관 구매자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나머지 일반 구매자들은 이달부터 본격화한 반도체 수급 문제로 차량 출고 시점이 밀려 보조금 신청이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서울시 관계자는 중복 신청, 중도 취소 등의 변수가 있으므로 단순 접수 대수만 보고 보조금 소진을 우려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해석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사전예약 규모가 워낙 큰 것은 맞지만, 아직 일반 구매자에 지급 가능한 보조금 할당량은 1000대 가까이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보조금 지급액과 지급 기한을 늘린 해외처럼 탄력적 운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보조금 관련 불확실성을 줄여 적기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전기차를 인도받을 수 있어야 친환경차 보급이 빨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