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여정, 첫 오스카 여우조연상… 역사를 새로 썼다

입력 2021-04-27 04:03
배우 윤여정이 25일 밤(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의 순자 역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아시아계이자 여성이며 74세 고령인 그가 저예산영화로 이 상을 받은 것은 도도한 아카데미 장벽을 무너뜨린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 배우가 아카데미에서 연기상을 받은 것은 한국 영화 102년 만에 처음이다. 아시아계를 통틀어서도 64년 만이다. 지난해 아카데미에서 4개 부문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은 쾌거다. 한국 영화계에는 물론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이 몹시 지친 국민에게도 큰 위로이자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윤여정의 수상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우선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범죄에 경종을 울리고, 아시아인을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껴안고 가자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동안 오스카는 거대 자본이 들어간 대작 위주의 작품, 백인 연기자 중심의 수상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인권이나 소수자 보호를 중시하는 칸 영화제 등에 비해 편협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는데 이번 수상으로 이런 편견을 깬 것이다. 중국계 여성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가 작품상 감독상 등을 차지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윤여정의 전형적이지 않은 연기를 오스카가 알아봤다는 점이다. ‘미나리’에서 윤여정은 미국으로 이주한 딸 부부를 돕기 위해 한국에서 건너간 할머니 역을 맡았다. 보편적이지만 결코 전형적이지 않은 연기였다. 손주들에게 쿠키를 구워주는 대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화투를 가르치고 고약한 말을 서슴없이 던지는 식이다. 윤여정은 같은 연배 여배우들과는 달리 데뷔 초반부터 파격적인 연기에 도전했다. “평생의 목적이 무엇을 하든 다르게 하는 것”이라는 최근 인터뷰가 이를 보여준다. 결혼, 도미, 이혼의 공백기를 겪은 그는 “나는 배고파서 연기했는데 남들은 극찬하더라”며 생존형 배우라고 말했다. 그만큼 스펙트럼이 넓고, 뻔하지 않은 연기를 펼쳐왔다. 그가 트레일러에서 숙식도 해야 하는 저예산영화를 찍으러 미국까지 직접 갔다는 자체가 이 영화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

이번 수상은 한국 감성이 세계에서도 통하며 자본력이 없어도 작품과 연기가 호평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다시 한 번 윤여정의 수상을 축하한다. 이를 계기로 여러 방면에서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입증할 콘텐츠가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