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양어선의 불법조업을 감시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이 좌초 위기에 처했다. 당초 정부는 1년간 시범사업을 진행한 후 추가 사업을 검토하기로 했지만 관련 예산 자체가 없다. 해양강국이라면서 ‘불법어업국’ 지정을 예방할 수 있는 국산 기술을 사장시키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해양수산부가 원양어선의 전자조업모니터링(EM) 시스템 설치와 관련해 배정한 올해 예산은 0원이다. EM 시스템은 CCTV와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24시간 조업 상황을 감시하는 시스템이다. 해수부는 지난해 10월 19일 사조산업, 세계자연기금(WWF)과 업무협약을 맺고 사조산업의 원양어선 1척에 국내 중소기업이 개발한 EM을 시범 설치했다.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1년간 시범 운영 후 사업 효과와 개선점 등을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사업 확대를 검토하겠다는 뜻으로 읽혔지만 예산을 배정하지 않아 차기 사업을 진행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시범사업 단계에서도 정부 지원 예산은 없고 WWF가 펀딩한 예산으로 사업이 집행됐다. WWF는 타국에서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녹색기후기금(GCF) 등과 함께 원양어선의 EM 설치 사업을 지원한 바 있다.
관련 국내 기술이 사장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원양어업은 조업 특성 상 참치 외에 다른 어류가 함께 포획될 가능성이 높다. 감시 인력인 ‘옵서버(Observer)’가 배에 승선하지만 24시간 감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다보니 사고가 터진다. 2019년에 한국 원양어선 2척의 불법 조업이 미국에 적발됐었다. 한국이 예비 불법 어업국으로 지정되면서 한국산 수산물 수출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EM은 이런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EM 설치가 의무도 아닌 만큼 기업들이 알아서 설치할 가능성은 적다. 현재로선 기술 수요가 없는 것이다. 원양업계 관계자는 “단발성 사업으로 끝날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EM 도입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현재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고 해명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