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매년 늘어나는 환자 안전사고, 적극 보고 필요합니다

입력 2021-04-27 04:02
낙상·투약 잘못 77.3%로 가장 많아… 자율보고에 ‘숨은 사례’ 많을 듯
평가인증원 새 위험요인 경보 발령… 최근엔 전기수술기 화상 주의보
환자·보호자 참여 미미해 ‘반쪽’… 의료기관 보고 의무 철저히 해야

전기 수술기 사용 시 부주의나 실수로 화상을 입는 사례가 꾸준히 발생해 최근 환자 안전 주의경보가 발령됐다. 수술대 금속에 우연한 접촉으로 생긴 옆구리의 3도 화상.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중앙환자안전센터 제공

#1. 50대 여성 A씨는 4년 전 항암치료를 위해 목 아래에 꽂은 항암제 투여관 제거 수술을 받다 예상치 못한 화를 당했다. 수술 부위 소독을 위해 바른 알코올이 완전히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의료진이 전기 수술기를 사용하다 A씨의 오른쪽 쇄골과 윗어깨 부위에 피부가 벗겨지는 화상을 입게 했다. 전기 수술기는 고주파 전류로 수술 부위를 지져서 지혈하거나 절개하는 데 쓰이는 의료기기다.

#2. 60대 남성 B씨는 3년 전 주 1회 먹는 관절염 치료제(MTX)를 매일 1회로 잘못 처방받아 8일 연속 복용했다. 이후 B씨의 입안에 궤양과 출혈이 발생해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다.보건복지부 산하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의 환자안전보고학습시스템(KOPS)에 올라온 대표적 사고 사례들이다. 2016년 7월 시행된 ‘환자 안전법(일명 종현이법)’에 따라 일선 의료기관은 진료나 치료 과정에서 생긴 환자 안전사고를 자율적으로 보고하도록 돼 있다.

2010년 백혈병 투병 중이던 9살 정종현군이 정맥주사로 맞아야 할 항암제를 척수강 내로 주입받아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환자 안전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법이 만들어졌다. 의료기관, 의료진, 환자의 부주의나 실수 등으로 발생한 안전사고에 대한 시스템적 개선과 재발 방지, 예방책을 찾고 이를 전 의료기관이 공유해 환자 안전에 대한 인식을 높이자는 게 법의 취지다. 다만 개별 사고 책임과 보상 문제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나 소송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평가인증원은 4년마다 시행하는 의료기관 인증 평가에 안전사고 관련 항목을 넣어 반영하고 있다.

5년간 환자 안전사고 4만건

법 시행 후 지금까지 보고된 환자 안전사고는 4만건을 넘었다. KOPS 집계 자료를 보면 2016년 563건, 2017년 3864건, 2018년 9250건, 2019년 1만1953건, 2020년 1만3919건으로 해마다 증가 추세다. 올해는 1월말 기준으로 980건이 보고됐다.

평가인증원 중앙환자안전센터 관계자는 26일 “환자 안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보고 건수가 매년 늘고 있는 건 맞지만 우리나라 전체 환자 안전사고 발생 현황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의료기관 자율 보고에 따른 것이라 드러나지 않은 사례들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5년여간 보고된 4만529건을 유형별로 보면 낙상이 46.9%(1만8989건)로 가장 많았고 투약 30.4%(1만2322건), 검사 5.0%(2046건), 진료 재료 오염 및 불량 2.2%(898건), 감염 관련 1.1%(462건), 처치·시술 1.1%(459건), 수술 1.1%(451건) 등 순이었다. 전체의 77.3%가 낙상이나 투약 사고에 의한 것이다.

평가인증원은 새로운 위험 요인이 확인되거나 중대한 위해를 미칠 우려가 있는 사고를 선별해 ‘환자 안전 주의경보’를 발령한다. 가장 최근인 지난 12일 전기 수술기에 의한 화상 주의경보가 발령됐다. 전기 수술기 사용 부주의나 실수로 환자의 피부와 연부조직에 화상을 입히는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전기 수술기 사용에 따른 환자 안전사고는 지금까지 모두 47건이 보고됐다. 이 중 환자에게 장기적 손상(입원기간 연장) 또는 영구적 손상(장애나 장해를 남김)을 입힌 사례도 4건(8.5%)이나 된다.

주의경보 발령에 따라 유사 사고에 대한 경각심 제고와 함께 전기 수술기 사용 지침 마련과 단계별 점검 사항을 명시했다. 특히 전기 수술기 사용 시 수술·시술 부위에 도포한 소독용 알코올이 완전히 건조됐는지, 주변에 흘러서 고여 있지는 않은지, 젖은 환자의 옷이나 물품과 접촉 여부 등 확인이 필요하다. 또 전기 수술기의 전기 공급 통로인 플레이트가 올바른 위치(깨끗하고 건조하고 표면적이 넓고 근육이 고르게 분포된 부위)에 완전히 밀착돼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아울러 환자의 몸에 인공 심장박동기나 삽입형 제세동기, 인공와우 같은 금속성 임플란트가 심어져 있을 경우 해당 전문의와 협진해야 한다. 수술 중 수술대나 체위 고정 장치 같은 금속 부품의 환자 접촉 여부도 꼭 확인해야 한다.

환자·보호자 보고율 고작 0.1~0.2%
전기 수술기 사용 장면(위 사진). 전기 수술기 플레이트 부착 부위인 발에 입은 화상 흉터.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중앙환자안전센터 제공

지난 5년간 이 같은 주의경보 발령은 모두 29건이 이뤄졌다. 이를 통해 환자 안전사고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개선됐음에도 의료기관 자율 보고에 맡기다 보니 사망 등 위해 정도가 큰 중대사고 발생 시 보고를 기피하거나 숨기는 경향이 있어 신속 대응과 재발 방지가 어렵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 왔다.

이에 지난해 200병상 이상 의료기관의 경우 중대사고 발생 보고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이 이뤄졌고 올해 1월 30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환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받은 것 외 수술이나 수혈, 전신마취 등으로 인한 심각한 신체·정신적 손상, 진료기록과 다른 의약품 투여, 의료기관 내 폭력, 다른 환자나 엉뚱한 부위 수술 등이 의무 보고 대상이다.

단, 위반 시 최대 300만원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재 조치는 오는 6월말까지 계도 기간을 거쳐 7월부터 효력이 발생된다. 중·소규모 의료기관의 경우 보고 전담 인력이나 인프라 부족 등으로 의무 보고체계가 제대로 작동할지는 미지수다.

앞으로 해결 과제도 남아있다. 200병상 미만 의료기관의 경우 보고 의무화 대상에서 빠져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중앙환자안전센터 관계자는 “작은 병원이나 의원급에 대한 환자 안전사고 전담인력 확보와 수가(환자 안전관리료) 지원 방안이 마련돼야 하고 의무 보고해야 할 중대사고 항목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사고 보고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필요하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최근 제출받은 복지부 자료(2018~2020년)를 보면 환자와 보호자의 안전사고 자율 보고율은 각각 0.1%, 0.2%에 불과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환자 안전법에는 의료기관, 보건의료인뿐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의 자율 보고가 명시돼 있지만 지난 5년간 활성화되지 못했고 의료기관에 설치돼 있는 환자안전위원회에도 환자와 보호자는 찬밥 신세였다”면서 “환자와 보호자 참여 없이는 ‘반쪽’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안전사고 주의경보 발령도 지금까지 채 30건이 안된다. 언론에 알려지는 많은 중대 안전사고들이 보고되지 않거나 주의경보에 담기지 않은 점이 아쉽다”면서 “국민이 체감하는 제도로 정착하려면 의료기관 의무 보고의 철저한 시행과 함께 환자와 보호자의 자율 보고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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