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제는 학교를 거의 새로 만드는 작업”

입력 2021-04-26 04:05

“학교를 거의 새로 뜯어 고치는 작업.”

인천 선인고 김지연(사진) 교육과정 부장교사는 고교학점제를 이렇게 정의했다. 지금까지는 국가가 교육과정을 설계하면 학교와 교사는 이를 수행하는 역할이었다. 학생에게 필요한 지식을 일방적으로 떠먹여주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학점제가 도입되면 학생 스스로 꿈을 이루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결정하고 국가와 학교 그리고 교사는 옆에서 돕게 된다.

학점제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인데 고교 교육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부는 학점제를 2025년에 전면 도입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전국의 여러 학교에서 연구학교나 선도학교 형태로 시범적으로 적용하고 있는데 선인고도 그 중 하나다. 이 학교에서 4년째 학점제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김 교사를 지난 20일 인터뷰했다.

학점제를 제대로 도입하려면 무엇을 바꿔야 할까. 김 교사는 “교육과정부터 교원 수급 정책, 공간, 대입제도 전부 바꿔야 한다. 공간의 경우 우리 학교는 구도심이라 학생이 줄어들고 있어 괜찮지만 신도시 등 과밀학급에선 공간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도입은 어렵다”고 했다. 과거에는 공간이 학생 수에 좌우됐는데 학점제가 시작되면 학생들이 요구하는 과목 수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예컨대 한 학년이 100명이라면 학급당 25명씩 교실 4개면 충분했다. 하지만 학점제에선 예측 불가다. 김 교사는 “올해 2학년 140명의 과목 선택한 것을 취합해보니 경우의 수가 103가지나 나왔다. 학생들의 시간표가 거의 다르다는 얘기다. 해마다 학생들의 성향에 따라 매년 공간 수요가 달라진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교원 정책도 맥락이 비슷하다. 그는 “수업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교사와 강사 구인이 쉽지 않다. 그해 들어오는 학생 성향에 따라 필요한 교사와 강사 수도 출렁이게 된다. 예컨대 지난해 국어교사 3명이 필요하고 사회교사 5명이 필요했는데 올해 갑자기 국어교사 5명, 사회교사 7명이 필요해지는 게 학점제”라고 했다.

그래서 막대한 돈이 투입돼야 하고 도입 과정에서 학교 현장의 혼란도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교육이 나아갈 방향이라는 게 김 교사의 생각이다. “과목을 선택할 기회를 주는 건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은 교사·학부모 조언을 참고해 자기가 선택하는 이유를 탐색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성찰하게 되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성장한다. 성인이 되기 전에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해보니 실제로 아이들의 주체적인 성향이 강해지는 걸 체감했다. 단순히 떠먹여주는 수업으론 기대하기 어려운 효과다. 교사 개인의 입장에선 번거로운 일이지만 교육적으로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그렇다고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는 “예를 들어 (공교육 도입 이후 줄곧 이어져 온) 담임교사 역할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학급이란 개념도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적지 않은 변화인데 이는 학점제 도입으로 학교에 닥칠 변화 가운데 일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2025년에 학점제의 이상이 구현될 정도로 많이 바뀌긴 힘들 것”이라며 “다만 과목 선택권을 일부 도입했던 2015 개정 교육과정(현행 교육과정) 이후 분명히 학교가 과거보다 개선된 부분이 있다. 이번 학점제 도입 시도를 통해 한 걸음 더 나간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라고 했다.

인천=글·사진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