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로 전환되면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하게 될까. 고교학점제란 학생이 선택한 과목을 이수해 학점을 누적하고 졸업하는 제도다.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이 고교에 가는 2025년 전면 도입 예정이다. 어른들이 정한 공부 말고 학생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진로·적성에 따라 선택한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점에서 중등교육의 새 장을 여는 일이다. 이 제도를 시범 적용 중인 인천 선인고를 지난 20일 찾아 생명공학 전공을 희망하는 김창대군(2학년)과 국문학을 공부해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김군의 친구 T모군의 하루 학교생활을 따라가 봤다(그래픽 참조).
숨가쁜 학점제의 하루
김군은 오전 8시20분쯤 교문을 통과했다. 조례를 마치고 중국어 교재를 챙겨 복도로 나온 시간은 8시45분쯤이었다. 바쁜 하루의 시작이라며 살짝 웃어보였다. 그러고는 5분 뒤 시작하는 중국어 수업을 위해 4층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친구인 T군은 언어와 매체 수업을 위해 온라인 스튜디오로 향했다.
이후 7교시까지 50분 수업에 10분 휴식이 반복됐다. 10분은 사물함에서 교재를 챙겨 다음 수업이 이뤄지는 교실로 이동하기에 촉박해 보였다. 김군의 2교시는 진로영어 시간이었지만 다음 주 예정된 중간고사를 위한 자습 시간이 주어졌다. 김군은 화학시험 공부를 했다. T군은 같은 시간 한문 수업을 듣고 있었다.
오전 10시45분쯤 김군이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나타났다. 목을 축이고 화장실을 들렀다 2층 강당으로 뛰었다. 3교시 체육시간을 끝내고 돌아온 김군은 마스크가 들썩일 정도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농구 자유투 수행평가가 있었고 이후 농구 게임이 진행됐다고 했다. 김군은 “이제 다시 공부해야지요”라며 가볍게 얼굴에 물을 묻힌 뒤 기하 수업이 있는 3층으로 향했다. 복도는 왁자지껄했다. “야 어디 가냐” “음악” “점심시간 농구?” “좋아”, 같은 반이어도 듣는 수업이 다르고 동선이 제각각이어서 대화는 스치듯 이어졌다.
점심시간이 되자 김군은 T군 등을 불러 농구를 했다. 3학년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체육시간에 다 못 흘린 땀을 흘렸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5교시부터 간간이 책상에서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김군은 물리학 영어 수학으로 이어진 수업을, T군은 미술과 영어 수학 수업을 들었다. 종례와 청소를 마치고 교문 밖으로 나선 시간은 오후 4시40분이었다.
평소라면 김군은 화학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저녁식사를 하고 길 건너 인화여고로 가야 한다. 선인고와 인화여고는 학생들에게 좀 더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 간호학, 마케팅과 광고, 영상제작 기초 등 13개 과목을 공동교육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중간고사 기간에는 공동교육과정은 열리지 않는다. 김군과 T군은 저녁을 먹고 학원가로, 합류한 다른 친구는 집에서 시험공부를 하기로 했다.
공강(空講)과 과목 선택의 공정성
저녁식사 시간을 활용한 인터뷰에서 T군은 60~70%를 자신이 원하는 수업으로 채웠다고 했다. 선인고는 신입생이 들어오면 진로적성검사를 시작으로 진로상담을 진행한다. 2학년에 올라가 어떤 수업을 선택할지 고민하도록 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9월에는 과목을 선택하도록 하고 10월에는 내년도 교육과정을 확정하는 절차를 진행한다.
세 학생 모두 과목 선택하는 과정 자체가 유익했다고 했다. 수업에도 좀 더 몰입하게 됐다고 했다. 다만 ‘쉼표’ 없는 생활이 빡빡하다고 입을 모았다. T군은 “사물함을 열어 책을 꺼내 다시 잠그고 화장실 갔다 물 마시면 이동 시간이 부족하다. 쉬는 시간이 10분만 더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군도 “1학년까지는 이동수업이 아니어서 잠시 엎드려 쉬거나 숙제 할 여유가 있었다. 공강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2, 3학년이 쓰는 3, 4층에는 학생들이 수업과 수업 사이에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소파와 PC 등이 마련돼 있었지만 사용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이 학교 교사들도 공강 시간을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 관리를 위해 추가로 인력이 필요했다. 마지막 7교시가 공강일 경우 조기 귀가 문제도 고민이었다고 한다. 수업을 묶어 두 시간 연속으로 수업하고 쉬는 시간을 늘리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대신 학생들의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층간 이동을 줄이고 한 층에서 수업이 가능하도록 교실을 배치했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피로도가 높아 개선 방법을 찾는 중이다.
학생들은 학교별로 개설 가능한 과목에서 차이 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었다. 김군은 “우리 학교에는 없는데 다른 학교에서 가능한 수업이 대학에 어필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학교생활기록부로는 그 학교 아이들을 이기기 어렵다. 또 우리가 지금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 게 어떤 건지 정보도 없다”며 “학교 여건과 상관없이 학생에게 같은 선택지가 주어져야 공정한 게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글·사진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미래교육 대전환 프로젝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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