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속에 장작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에 앉아 하염없이 장작불 이미지를 바라본다.
설치미술가 김승영(58) 작가는 우리에게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이렇게 ‘불멍’(불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하며 ‘성찰의 시간’을 가지라고 권한다. 서울 성북구 성북로 성북구립미술관에 차린 개인전 ‘땅의 소리’(6월 27일까지)를 통해서다. 전시는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불멍의 추억을 소환한다. 활활 타오르다 이내 사그라지는 불길은 매혹적이지만 그 자체가 인생사의 은유 같아 생의 비의를 느끼곤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영상 속 불의 이미지 밑에는 물레가 빙빙 돌아가 불길에 더욱 빠져들게 한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명상의 시간을 유도하듯 영상 아래에 직사각형 ‘물거울’을 설치했다. 어둠에 눈이 익은 뒤에야 물을 담은 그 직사각형 구조물이 문짝 틀로 이뤄진 것임을 발견하곤 놀라게 된다. 도어 손잡이까지 달려 있어 생과 사의 경계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눈치챘겠지만 작가는 불, 물, 빛, 소리 등을 통해 일상의 나를 벗어나 진정한 나를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복도 창에는 형광색 시트를 붙여 늘 보는 바깥 풍경도 색다른 감각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복도 맞은편 끝에서는 오래전에 들었던 소리가 나와 반갑다. 비질하는 소리다. 아파트가 보편화되기 이전에는 골목마다 아침을 열던 소리다. 쓱쓱, 쓱쓱 마음을 쓸어주는 기분을 주던 소리다.
마음에 쌓인 먼지는 어떻게 쓸어낼 수 있을까. 작가는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관람객들이 마음을 비질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전시장엔 낡은 책상과 의자가 듬성듬성 놓여있는 방이 있다. 관람객은 책상 위에 비치된 종이에 비우고 싶은 것을 쓴 뒤 종이를 구겨 바닥에 버리면 된다. 뭘 버리고 싶은 걸까. “뭐 하고 살지. 날 설레게 하는 게 없다.” “남의 기준 남의 평가가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을 의식하면서 사는 것 같다.” 구겨진 채 바닥에 수북이 쌓인 종이뭉치는 많은 사람이 마음의 비질을 원했음을 웅변한다.
김 작가는 종로구 삼청로 공근혜갤러리에서 프랑스 사진작가 마이클 케냐와 함께 2인전 ‘반영(Reflections)’전(5월 23일까지), 중구 칠패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개관 2주년 기념 기획전 ‘공(空)’(6월 30일까지)을 동시에 갖고 있다. 모두 성찰과 명상을 주제로 하는 전시다. 홍익대 조소과를 나온 김 작가는 벽돌, 스피커, 문 등을 사용하는 관객참여형 설치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