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주님이 정해주신 푯대를 향하고 있는가

입력 2021-04-27 03:06

농부인 아버지의 부탁으로 아들이 쟁기를 잡고 밭을 일궜다. 그런데 쟁기질이 똑바르게 되지 않고 밭고랑이 이리저리 비틀어졌다.

“아들아 네가 실수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들아, 소를 몰고 쟁기질을 하려면 먼저 분명한 목표점을 정해야 한다. 목표지점을 정하지 않고 소를 몰면 똑바른 밭고랑을 만들 수 없단다.” 이처럼 우리의 삶도 분명한 목표 없이 살아갈 때 구부러진 밭고랑처럼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목표를 갖고 살아가야 할까. 믿는 자인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자신들의 생각이나 경험에 의해서 세워지고 세상적인 풍조를 따라 만들어진 목표를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목표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고 잡을 수 없는 무지개와 같은 것이다.

특히 목회자는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삶의 목표를 잡아야 한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목회는 나의 목회가 아니라 주님의 목회여야 한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푯대로 삼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정해주신 푯대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주님이 정해주신 목표를 붙잡으면 그 목표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주님이 주신 새로운 목표는 우리를 거룩하고 강건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준다. 우리에게 새로운 목표를 주시는 주님께서 그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우리와 함께하신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목표를 주시면서 약속하셨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주님이 주신 목표, 즉 새로운 사명으로 살면 주님께서 항상 함께하신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예전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게 된다.

이와 반대로 주님이 주신 삶의 분명한 목표가 없는 목회자는 주저하고 망설인다. 조그마한 일에도 상처받아 쓰러지고, 약한 유혹에도 쉽게 넘어진다.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표는 올바른 삶의 나침반이 되고, 그 목표를 향한 힘과 지혜를 얻게 한다. 주님이 주신 삶의 분명한 목표는 수많은 고통과 위기, 적들의 공격을 넉넉하게 이기는 능력을 준다. 주님이 주시는 푯대를 향해 나아가면 성령님께서 함께하시며 인도해 주신다.

요셉이 고통과 유혹의 세월을 이겨내고 이집트의 국무총리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은 그가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항상 바라봤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목표를 잊지 않았던 요셉을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도와주셨기 때문이다.

세상적인 목표를 버리지 못했던 사울왕은 망했고,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바라봤던 다윗은 승리했다. 세상적인 목표를 마음속에 감추고 살았던 발람은 망했고,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끝까지 붙잡았던 엘리야는 불마차를 타고 하늘나라에 입성했다.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바라봤던 노아는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됐고, 그를 조롱하며 세상이 주는 목표만을 바라봤던 사람들은 다 죽임을 당했다.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바라봤던 사도들은 자신들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됐다. 반면 세상이 주는 목표 만을 추구하던 로마제국은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 삶의 성공은 열심과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목표에 있다. 삶의 고통을 이기는 힘은 우리 안에 있는 인내심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바라볼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세상에 가득한 죄악의 유혹을 이기는 힘은 우리 안에 있는 인격 수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목표를 바라볼 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주는 성공 지향적인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뤄 드리려는 승리 지향적인 목표를 찾아야 한다.(빌 3:13~14)

그렇다. 우리 목회자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바라봐야 한다. 먼저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따라서 삶의 모양을 정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삶의 분명한 목표를 세상에 외칠 수 있어야 한다. 목회자가 하나님이 정해주신 목회의 목표에 따라 살아갈 때 바울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고 고백하게 된다.

이성철 목사(미국 달라스 중앙연합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