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 백신을 더 빨리, 더 많이 확보하려는 가운데 한편에선 ‘귀한 백신’이 버려지고 있다. 백신 접종을 시작한 병의원에서 접종예약이 취소돼 이미 개봉한 백신을 못 쓰고 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향후 1만4500곳의 병의원으로 접종장소가 확대되면 폐기되는 백신이 더 늘 수 있어 방역 당국이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에서 오포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동훈 원장은 2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 19일부터 위탁 의료기관으로 지정돼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했는데 접종 예약자 중 못 오게 되는 인원이 발생해 이틀 동안 하루 5명분 백신이 남아서 버렸다. 너무 아까웠다”고 전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은 한 바이알(병)을 개봉하면 10~12명분을 6시간 안에 맞혀야 한다. 오포의원에선 한 병으로 12명을 맞힌다. 그러나 예약한 접종자 중에 못 오는 인원이 생기면 백신이 남게 된다. 대체할 접종자를 찾지 못하면 결국 시간이 지나 폐기할 수밖에 없다.
김 원장은 “백신을 최대한 폐기하지 않고 사용하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당장 이날 오포의원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맞기로 한 예약자는 25명이었다. 백신 두 병으로 다 맞히기엔 부족하고, 세 병을 개봉하면 남을 것이 우려됐다.
김 원장은 “보건소에 백신이 남아 곤란하다고 했더니 ‘다음 날 오기로 한 환자에게 미리 와 달라고 연락을 하라’고 했다”며 “하지만 갑자기 예약을 바꾸는 건 쉽지 않고, 예약환자 중 다른 동네에 사는 경우도 많아서 1~2시간 안에 병원에 오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난문자 방식으로 ‘어느 병의원에 백신이 몇 명분 남았으니 1~2시간 내 내원이 가능한 사람은 와 달라’는 내용을 국민에 안내하면 좋을 것 같다”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6월까지 백신 접종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이 1만4500곳으로 늘면 비슷한 사례가 더욱 늘 것으로 우려된다. 지역예방접종센터는 행정인력이 별도로 있어 예약취소가 발생할 때를 대비해 대체 접종자 명단을 미리 준비한다. 하지만 소규모 병의원은 쉽지가 않다. 인력도 적을뿐더러 평소처럼 일반 환자도 진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역 당국이 코로나19 백신 접종 위탁 의료기관에 전달한 지침에 따르면 백신이 남았을 때는 폐기량 최소화를 위해 다른 진료를 보러 내원한 환자의 동의를 구해 접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난색을 표한다. 당장 1~2시간 내 내원하는 환자가 적을 수 있고, 백신 접종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방역 당국도 현실적인 한계를 인식하고, 폐기량 최소화를 위해 추가 대책을 논의 중이다. 지난 16일 기준 위탁 의료기관 32곳에서 154바이알의 백신이 폐기됐다. 많게는 1800여명이 맞을 수 있는 양이다. 다만 여기엔 보관·유통 문제로 폐기된 경우도 포함됐다.
미국에서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활용해 백신이 남을 경우 대체 접종자를 찾는다는 공고를 내고 있다. 김기남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예방접종관리반장은 “의료기관 1만4500곳에서 접종이 시작되면 폐기량이 늘어날 수 있다”며 “5월 중 만 65세 이상 접종자의 사전예약을 받을 때 각 의료기관이 남는 백신을 실시간 공유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