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학대 사망사건’ 이후 ‘아동학대살해죄(이하 살해죄)’가 신설됐지만 실제 현장에서 적용하기엔 어려움이 적지 않다. 생후 21개월 여아를 숨지게 한 어린이집 원장에게 피해자 측은 살해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경찰은 선례가 없고, 고의성을 판단하기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대전경찰청은 지난달 30일 여아를 숨지게 한 혐의(아동학대치사)로 대전 어린이집 원장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2일 밝혔다. 어린이집 폐쇄회로(CC)TV엔 A씨가 B양 옆에 누워 엎드린 B양에게 담요를 덮고 자신의 다리와 팔로 누르는 모습이 담겼다. B양은 버둥거렸고 엎드린 채 고개를 들기도 했다. A씨는 ‘B양을 재우고 1시간 뒤 확인해 보니 숨을 쉬지 않는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응급기록지엔 구급대 출동 시 B양은 질식으로 인한 청색증이 나타났고 심정지 상태였다. 구급대원이 두 차례 심폐소생술을 했음에도 의식이 없었다. 경찰은 A씨에게 아동학대 혐의를 적용했다가 비슷한 학대를 추가 확인한 후 아동학대치사로 혐의를 변경했다.
‘정인이 학대 사망사건’ 이후 지난 2월 통과된 아동학대범죄처벌특례법 개정안은 살해죄를 신설했다. B양 측은 ‘고의적 학대행위’로 사망한 만큼 살해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B양 측 부지석 변호사는 “유아를 엎드리게 해 놓고 이불로 감싼 후 누르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며 “아동학대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법적 취지를 고려해 아동학대살해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혐의 적용이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대전경찰청 관계자는 “아직 살인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살해죄 적용 선례가 없는 점 등 법률 검토 결과를 반영해 혐의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A씨가 고의적으로 B양을 살해했는지 여부는 추후 검찰의 수사 단계, 재판 과정에서 입증될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혐의를 보수적으로 적용하면 입법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오윤성 순천향대 교수는 “어떤 법이든 새로 시행되면 선례는 없다”며 “학대 과정에서 아이가 사망했다면 경찰이 살해죄를 우선 적용하고 이후 법리적 판단은 재판 과정에 맡겨도 된다”고 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