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중 “피해자님” 현충원 사과에… 피해자 “순국선열 아니다”

입력 2021-04-23 04:03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22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 앞에서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취임 후 처음으로 박원순·오거돈 전 서울·부산시장의 성범죄 피해자에 대해 사과했다. 4·7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당 쇄신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피해자측은 윤 비대위원장의 ‘현충원 사과’에 대해 “피해자는 현충원에 안장된 순국선열이 아니다”고 반발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윤 비대위원장은 22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면서 현충탑 앞에 무릎을 꿇었다. 참배를 마친 윤 비대위원장은 방명록에 “선열들이시여! 국민들이시여! 피해자님이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민심을 받들어 민생을 살피겠습니다”라고 적었다. 피해자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한준호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번 보궐선거의 발생 이유가 됐던 피해자 분들을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윤 비대위원장의 사과에 대해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 비대위원장이 지난 16일 원내대표에 당선된 지 일주일 만에 공식석상에서 한 첫 사과인 데다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현충원에서 피해자를 언급한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다.

박원순 전 시장 성범죄 피해자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는 “돌아가신 분을 기념하는 곳에서 살아있는 피해자에게 사과한다는 게 매우 적절치 않다”며 “사과했는데 무엇인지에 대한 사과인지도 공허하다”고 비판했다. 오거돈 전 시장 성범죄 피해자도 입장문을 통해 “저는 현충원에 안장된 순국선열이 아니다”며 “도대체 왜 현충원에서 사과를 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민주당 지도부가 말한 재발방지 대책은 감감무소식인데 오늘 현충원에서 사과를 하니 너무나 모욕적이다. 제발 그만 괴롭히세요”라고 했다.

야권에서도 윤 비대위원장의 사과가 이른바 ‘TPO(시간·장소·상황)’에 어긋났다고 비판했다.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진정한 사과는 때와 장소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상식인데 현충원이 어떤 곳인지 진정 모르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윤 비대위원장은 자신의 사과가 논란이 되자 피해자의 신상문제를 고려해 현충원에서 사과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당이 충분히 마음으로부터 사과를 드리지 못한 것 같아 사과했다”며 “피해자들의 신원이 밝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분들을 찾아가거나 뵙자고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그분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릴 수 있는 적당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현충원을)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초선의원 모임 ‘더민초’도 당 지도부가 피해자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할 것을 요구했다. 더민초는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당내에서 불거진 성비위 사건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국민과 피해자에게 사죄한다”며 “당 지도부에 국민과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더민초는 또 당 차원의 쇄신위원회 구성을 제안하고 당내 민주주의 강화도 촉구했다.

박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