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호주 관계가 파탄 직전으로 치닫고 있다. 호주는 빅토리아주 정부가 중국과 체결한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BRI) 협정을 파기함으로써 반중 노선을 보다 분명히 했다. 중국은 이를 의도적인 도발로 보고 보복 조치를 예고했다.
머리스 페인 호주 외무장관은 21일(현지시간) 빅토리아주 정부가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중국 정부와 체결한 업무협약(MOU) 2건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페인 장관은 “이번 협약은 호주의 외교 정책과 맞지 않고 외교 관계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앞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지난 2월 언론 인터뷰에서 “일대일로 협정이 호주에 가져올 이익이 없다”며 파기 방침을 시사했다.
호주 연방정부는 주정부가 외국 정부와 체결한 협정을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데 이를 행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호주 연방의회는 지난해 12월 지방정부가 외국 정부와 맺은 협정이 국익에 반한다고 판단될 경우 연방정부가 그것을 파기할 수 있도록 한 ‘외교관계법’을 통과시켰다. 당시에도 이 법안은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에 따라 호주 주정부는 연방정부에 외국 정부와 맺은 모든 협정을 제출했고 연방정부는 이를 심사해 왔다.
빅토리아주는 2018년 10월 중국과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한다는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이후 대중무역 적자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강한 불만과 반대를 표명했고 호주에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며 “가뜩이나 어려운 양국관계가 설상가상이 됐다”고 말했다.
중국 전문가들은 정부가 상응 조치를 취할 것으로 전망했다. 첸훙 화둥사범대 교수는 글로벌타임스에 “호주는 국내법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중국에 일격을 가했다”며 “중국은 그간 호주의 반중 움직임에 무역·투자 측면에서 공식적 대응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호주 관계는 악화일로다. 양국 관계는 호주가 2018년 5세대(G) 네트워크 사업에서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배제하면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중국은 호주가 화웨이의 5G 참여를 봉쇄함으로써 미국의 기술 패권에 힘을 실었다고 비난했다. 이어 호주는 지난해 코로나19 기원에 관한 국제 조사를 요구하면서 중국을 압박했다. 그러자 중국은 호주산 석탄과 목재, 소고기, 와인 등의 수입을 중단하거나 최고 200%가 넘는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것으로 맞대응했다. 호주는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협의체 ‘쿼드(Quad)’와 영미권 5개국의 기밀정보 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즈’에도 참여하고 있다.
일대일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제시한 신실크로드 구상이다. 고속도로, 철도, 항만 등 대규모 인프라 구축 지원을 통해 중국과 유럽, 동남아, 아프리카 등을 잇는 프로젝트다. 미국은 이를 중국 중심의 경제 패권 구축 작업으로 보고 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