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이 바람을 남기듯이
시간이 메아리를 남기듯이
달이 바닷물을 끌어당기듯이
불 켠 듯 불을 켠 듯
해를 향해 가라
그림자는 늘 자신 뒤에 있을 것이니
그대는 행성이 아닌 항성
장래가 천천히
눈부셔지길 바란다
-천양희 시집 ‘지독히 다행한’ 중
‘장래가 천천히/ 눈부셔지길 바란다’는 구절이 오래 머리에 남는다. 늘 경쟁하고 어디서나 평가받아야 하는 청년들에게 이보다 멋진 위로의 말이 있을까. 시인은 아마도 젊은 누군가의 작품을 심사한 후 그에게 격려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누군가는 심사에서 떨어진 사람일 수도 있다. 낙심하지 말기를, 실패가 삶의 일부임을 이해하기를, 그리고 다시 앞으로 걸어가기를, 그래서 마침내 눈부셔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