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첫사랑 같은 존재예요. 피아니스트로 활동하지 않은 지 30년이 넘었지만 피아노는 늘 옆에 있는 존재여서 사랑이 더 깊어진 것 같아요.”
지휘자 정명훈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아트홀에서 열린 앨범 ‘하이든·베토벤·브람스 후기 피아노 작품집’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명훈이 피아니스트로 돌아온다. 2014년 한국에서 피아노 리사이틀 무대를 올린 지 7년 만이다. 대구(23일) 군포(24일) 광주(25일) 수원(27일) 서울(28·30일)에서 무대에 오른다. 7년 전처럼 이번에도 피아노 앨범과 함께다. 2014년 앨범이 ‘손주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 콘셉트의 소품 위주였다면 이번 앨범은 작곡가들이 인생 말년에 지은 피아노 작품들을 통해 ‘인생이라는 아름다운 여정과 영혼의 자유로움’을 담았다.
정명훈은 “너무나 사랑하는 악기인 피아노를 통해 지휘로는 표현할 수 없던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솔직히 말하면 첫 번째 앨범이나 두 번째 앨범이나 레코드 프로듀서인 아들의 권유로 녹음하게 됐지만 이번에 리사이틀까지 열지는 몰랐다”면서 “전문 피아니스트들에겐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정명훈은 음악 커리어를 피아니스트로 시작했다. 7살 때 서울시향과 협연할 정도로 피아노에 두각을 나타낸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1970년 뉴욕타임스가 주최한 WQXR 피아노 콩쿠르 1위, 73년 독일 뮌헨 국제음악콩쿠르 2위에 올랐다. 특히 72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구 소련 시절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 2위를 차지한 후 귀국했을 때는 서울에서 카퍼레이드까지 열렸다.
이후 일부 초청 독주회를 제외하면 지휘 무대에 집중했다. 그래서 첫 피아노 앨범과 리사이틀도 콩쿠르 이후 40여년이 지난 2014년에야 성사됐다. 지휘자로 활동하는 동안에는 지휘를 겸하는 협연과 실내악, 성악 반주를 통해 녹슬지 않은 피아노 실력을 보여줬다.
정명훈의 이번 앨범에는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 60번과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0번, 브람스의 네 개의 피아노 소품 등 작곡가 3명이 인생 말년에 완성한 피아노곡들이 담겼다.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해외 오케스트라 공연이 대부분 취소되면서 정명훈은 피아노를 연주하며 일상을 보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삶의 여러 단면을 표현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열망’을 담았다”면서 “유년에 접한 음악과 말년에 접한 음악은 다른 경험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2014년 첫 리사이틀 당시 정명훈은 오스트리아의 명품 피아노 브랜드 뵈젠도르퍼를 고집했다. 국내 공연장에는 뵈젠도르퍼가 없어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악기를 직접 운반해왔다. 올해는 국내 공연장에 있는 스타인웨이&선스를 사용할 계획이다. 이번 투어에 포함된 국내 공연장들은 정명훈이 뵈젠도르퍼를 요청하면 확보하기 위해 나설 예정이었지만 별도 요청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명훈도 이날 “이젠 어느 피아노를 치느냐보다 (허리 때문에) 피아노 의자가 더 중요하다”면서 “요즘은 원하는 대로 손가락이 안 돌아가는 대신 예전엔 안 보였던 게 보이고 느끼지 못한 것을 더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세 번째 앨범은 어떤 이야기가 담길까. 정명훈은 “창피하다”며 답을 꺼리다가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은 앨범”이 될 것이라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