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움 때문이죠.”
영화 ‘미나리’로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스티븐 연(사진)이 배우를 선택한 이유다. 자유로웠기에 꿈을 좇아 할리우드로 떠나고 아시아계를 향한 편견에 맞서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
스티븐 연은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할리우드의 편견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그는 “(대본 속 아시아계 미국인은) 항상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옳은 일을 해야만 했다. 이런 역할을 위해 아시아계 미국인 캐릭터가 존재한다고 느꼈다”고 미국 CBS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스티븐 연은 5살 때 가족들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가 이듬해 미국 미시간주로 옮겼다. 건축가였던 아버지가 미국에 다녀온 후 돌연 결정한 일이었다. 스티븐 연은 스스로를 한국에서 나고 미국에서 성장한 ‘재미교포 1.5세대’로 표현한다.
그의 성장기는 한국 이민자 부모 세대의 가치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한국 이름 ‘상엽’ 대신 동네 의사 이름인 ‘스티븐’을 미국 이름으로 지어줬다. 의사가 됐으면 하는 전형적인 한국 아버지의 바람이 담겼지만, 그는 생물학 성적표를 내보이며 거부했다. 학교에선 가라앉아 있고 가족과 함께할 땐 적극적인 자신의 모습에 회의를 느끼고 스스로를 찾으려 했다. 캘러머주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며 대학 극단에서 연기를 처음 접하고는 배우의 길을 선택했다.
그가 처음 대중에게 알려진 건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에서다. 첫 경력인 시카고의 세컨시티 극단 생활을 접고 할리우드에 간 지 6개월 만에 ‘워킹데드’에서 비중 있는 조연인 ‘글렌 리’ 배역을 따냈다. 재미교포로 그려진 글렌은 악인 아니면 감초 역할이 주를 이루던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아시아인 캐릭터와 달랐다. 영리하고 용감하며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역할로서 전체 스토리를 이끌어갔다. 이 드라마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차별과 편견을 피할 수는 없었다.
영화 ‘미나리’는 그런 그에게 일종의 구원이었다. 그는 영화에서 미국 남부 시골에 정착하기 위한 한인 이민자 가족의 가장 ‘제이콥’을 연기하며 아버지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그는 “저와 비슷한 삶이 대본에 있는 것을 보고 자유로워진 느낌이었다”며 “영화 촬영 내내 울었다”고 말했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함께 영화를 본 스티븐 연의 아버지는 말없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고 한다.
그는 영화의 의미를 “재연결”이라고 짧게 답한 뒤 “세대들이 서로를 그리워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민 1~2세대에는 세대 차가 존재한다”며 “문화와 언어의 차이 때문에 추상적으로만 아버지를 봤는데 영화를 통해 아버지라는 사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할리우드에 도전하는 아시아인에겐 “가장 중요한 건 각자가 자기 자신만의 유일한 세계를 가진 사람임을 잊지 않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찾아야지 다른 배우의 여정을 따라 할 수는 없다”고 미국 GQ와 인터뷰에서 밝혔다.
스티븐 연이 25일(미국시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을까.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1일 스티븐 연의 활약을 조명하며 “그는 할리우드에서 누구나 찾는 배우”라며 “아시아인과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할리우드 영화 제작의 새 지평을 열고 있는 지금, 더 좋은 수상 타이밍은 없다”고 전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