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원 같은 신학교… 강의실, 기도의 용광로 돼야

입력 2021-04-26 03:04
백석대 신대원 합격자들이 2018년 2월 충남 천안 백석연수원에서 기도회를 갖고 있다. 백석대는 신대원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매년 수련회를 개최하며, 기도와 성경통독 훈련을 한다.

성경에는 신학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신학이란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신학이란 말 대신 경건, 교리, 올바른 가르침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초대교회부터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역사를 보면 참된 신학은 항상 하나님을 향한 경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해 즐거워하는 것,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것, 그것이 신학이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칼뱅은 참된 신학을 ‘구원 교리와 경건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 무릎 꿇고 경배하며 사랑해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개혁자들은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칼뱅은 신학자이기 전에 제네바교회의 목사였고 기도의 용사였습니다. ‘기독교 강요’에서도 기도를 예정론만큼 강조해 다루고 있습니다. 루터와 츠빙글리 역시 학문과 영성을 겸비한 분들이었습니다.

교회 개혁은 성경을 사랑하고 기도하며 말씀에 순종할 때 이뤄질 수 있습니다. 요한 웨슬리, 조너선 에드워즈,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벤저민 워필드와 같은 분들도 경건한 학자였기에 교회를 살리는 신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신학을 단순히 학문으로 한 분들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말씀을 삶에 적용하며 실천한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신학자이면서 동시에 목회자였고 성도들과 교회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선포한 설교자였습니다. 말씀을 통해 영적 생명력을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던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처럼 학문과 영성을 겸비한 분들이었기에 성경의 원리를 따라 교회를 개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 몸부림치던 그분들의 경건한 삶을 본받지 않고 신학과 이론만을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오늘날 신학의 문제입니다.

오래전 어느 교수로부터 “신학이 발달하고 신학자가 많아질수록 교회는 점점 쇠퇴하게 된다”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서구의 크고 유명한 교회들이 문을 닫고 극장이나 식당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신학이 학문으로만 발전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국교회 초기 목회자들은 성경학교와 무인가 신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오직 성경만을 부여잡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 기도원에서 금식했습니다. 차디찬 골방과 강단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면서 목회했습니다.

이처럼 기도로 무장한 목회자들이 말씀을 능력 있게 선포했기에 한국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학문적인 배움은 부족했지만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는 목회자에게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서구의 신학이 들어오면서 성경보다 학문을 우선하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 교육부 인가를 받아 목회학 석사과정이 시작된 이후 유학파 학자들은 자신들이 배운 서구 신학을 신학교육에 적용했습니다.

이때부터 신학의 내용뿐만 아니라 교육 방법도 서구화됐습니다. 그에 따라 신학은 점점 사변화됐고 성경의 권위는 떨어졌습니다. 목회자를 배출하는 신학대학원에서 경건 훈련은 하지 않고 학문을 가르치는데 치중하면서 교회도 점차 영적인 힘을 잃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문제는 목회자의 문제이고, 목회자의 문제는 신학자의 문제이며, 신학자의 문제는 저를 비롯한 신학교 운영자의 문제라고 외쳐온 것입니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성령 충만한 신학자를 교수로 모셔야 했는데 학문성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 문제입니다.

한국교회가 살려면 신학교의 교육방식과 체계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교수도 변해야 합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로 믿고 가르치며 경건에 힘써야 합니다. 교수이기 전에 신실한 목회자가 돼야 합니다. 성경을 붙잡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 신학 서적과 주석을 1시간 읽었다면 성경은 2시간 묵상해야 하고, 성경을 2시간 묵상했다면 기도를 3시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학문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성령의 지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목회는 자신이 배운 신학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으로 하는 것입니다. 무릎으로 하는 것입니다. 머리로 배운 지식이 가슴으로 내려와서 무릎으로 이어질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도들의 문제와 어려움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면서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말씀을 준비해 선포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역사합니다. 신학교에서 이런 목회자를 길러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학교에서부터 말씀과 기도를 통해 경건의 불씨가 살아나야 합니다. 강의실이 기도의 용광로가 돼야 합니다. 기도원 같은 신학교, 학문과 영성을 겸비한 신학자,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을 소유한 목회자가 돼야 합니다. 신학을 학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으로 선포할 때 한국교회는 다시 부흥할 것입니다.

장종현 백석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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